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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을 가다 33 - 팔미도와 물치도

 팔미도는 인천연안부두에서 남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섬으로, ‘팔미’란 남쪽의 대팔미도와 북쪽의 소팔미가 육계사주로 연결돼 상공에서 보았을 때 그 모양이 여덟 팔(八)자의 뻗어 내린 꼬리처럼 보여 붙어진 이름이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남서쪽 해상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 인천항 개항 이후 해상교통의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팔미도에 설치된 등대는 구한말 인천항을 드나드는 일본 배들이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해지자 일본이 조선에 주요 항로와 항만의 수로 측량을 강권하는 과정에서 1903년에 만들어졌다.

 

몇 년 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촬영지로 알려진 팔미도는 1950년 9월14일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 명령을 받은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격전 끝에 점령, 팔미도등대에 불을 밝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국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팔미도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인천연안부두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러·일전쟁 당시 ‘바랴크'함 등 러시아 함정 2척에 타고 있던 해군장병 추모조형물과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형 마트료시카 인형이 설치돼 있다.

 

1904년 2월 팔미도 부근 해상에서 일본 군함들과 포격전을 벌인 후 큰 손상을 입고 소월미도로 피신한 두 함정이 선체를 일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항복 대신 자폭을 감행했고, 러시아는 해군장병들의 이 같은 영웅적인 희생을 기리기 위해 100주년을 기념, 지난 2004년 추모조형물을 세웠다.


팔미도는 약 2억 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적자색화강암으로 구성돼 있는데, 화강암이 적자색을 띤 것은 정장석이라는 광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미도의 적자색화강암을 자세히 살펴보면 광물의 입자가 비교적 크고 고르다. 이를 통해 팔미도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서서히 냉각되면서 형성된 뒤 융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미도는 러·일전쟁의 격전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인천상륙작전의 시발점 등 근·현대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오랫 동안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다가 역사와 생태탐방을 위해 2009년에 문을 열었다.

 

팔미도를 운항하는 유람선이 연안부두에서 하루 3회 출항하며 탐방 소요시간도 왕복 승선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으로 짧아 가족단위 여행에 제격이다.

 

인천시 동구에 속한 유일한 섬인 물치도는 만석동 해안에서 4.8km, 영종도 구읍선착장에서 약 1km 떨어져 있고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고 해 물치도(勿淄島)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화가 스즈키 하사오가 사들인 뒤 이 섬의 형태가 작약꽃 봉우리와 같다고 해 작약도라고 불리다가 올해 원래의 이름인 물치도가 됐다.

 

물치도는 1871년(고종8) 신미양요 당시 미국군함 5척이 이 섬에 정박한 뒤 강화해협의 손돌목을 지나 광성보 전투에 참여하게 됐는데 이 때 나무가 울창하다고 해 우디아일랜드(woodyisland, 목도)라고 했고,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의 이름을 따서 부아제(boisse)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작약도는 병인양요·신미양요와 같이 서구열강들이 조선에 문호개방을 요구한 사건들과 일본이 영종진 부근에서 일으킨 양민 살해와 부녀자를 겁탈한 운요호사건 등 구한말 개항과정에서 일어난 역사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셈이다.

  

물치도는 1963년 경기도 부천군에서 인천시로 편입되고 때마침 한강에서 수영이 금지됨에 따라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름철 피서지로 1969년도 ‘인천시정백서’에 따르면 연간 3만5000여 명에 달한 관광객들이 찾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보가 물치도를 소유하고 있었을 때 연안부두를 출발하는 쾌속관광선 2척을 운항하면서 여름철 하루에 5000명 이상이 섬에 들어온 때도 있었고, 인천 사람치고 어릴 때 이곳에 놀러가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때는 유명한 해상유원지였다.

 

그러나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면서 수많은 장밋빛 해상관광개발계획이 발표됐으나 지금까지 원활하게 추진된 적이 없고, 지금은 뱃길마저 끊어져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는 섬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물치도 남쪽 해안가 기슭에는 해방 후 최초로 세워진 무치성 등대가 있는데, 이 등대는 인천항과 주변 바다 길목을 알려주는 어부들의 등불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의 길잡이 구실을 하고 있다.

 


물치도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들은 인접한 영종도 구읍선장에 노출된 암석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선캄브리아대에 퇴적돼 형성된 퇴적암이 지각변동을 받아 형성된 퇴적기원의 변성암이 기반을 이루고 있고, 이를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화강암과 백색의 석영맥 등으로 이뤄져 있다.

 

팔미도와 물치도를 비교해 보면 한때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팔미도가 관광의 명소로 탄생한 것과는 반대로 인천을 대표하던 해상유원지였던 물치도는 관광객이 접근할 수 없는 실정이 됐다. 물치도가 해상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바란다./ 김기룡·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