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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12. 영원히 즐겁고 오래사는 땅 낙생(樂生)

탄천을 사이에 두고 현재 판교 지역이 낙생...낙생역과 판교원, 낙생행궁, 군량미 보급 창고 역할

 

낙생(樂生), 영락장생(永樂長生)! 길이길이 즐겁고 오래 살 수 있는 땅!
 
성남 탄천 주변은 호랑이가 담배피던 수만 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서 문명의 꽃을 피웠고,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서 4차산업을 선도하는 신문명의 발상지로 성장하고 있다.

 

 
성남시 승격 이전의 광주군 시절에는 이 지역을 낙생면으로 불렀다. 탄천을 사이에 두고 판교 쪽이 낙생이다.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직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잡월드 앞쪽을 낙생역 또는 낙성말이라 하고, 옛날에는 낙생장터가 있어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장터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아니하였고, 옛날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낙생역과 판교원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강 남쪽은 해마다 봄가을에 군사훈련장이 되었는데 훈련을 하러 나온 태종, 세종, 세조 임금 등이 낙생역이나 역 앞 들판에서 머물렀다.
군사훈련을 나온 역대 왕들이 처음에는 들판에서 파오달(波吾達)이라고 하는 몽골식 게르에서 숙박을 했는데, 성종 때에 와서는 낙생행궁(樂生行宮)을 지어 머물렀다.
조선 시대의 행궁으로는 수원, 강화, 전주, 의주, 양주, 부안, 온양행궁 등과 함께 광주 낙생(현재 성남 분당) 지역에 낙생행궁이 있었고, 남한산성의 행궁은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 이라 하였다.
 


그렇게 번성했던 장터와 낙생행궁이 어느 해인가 홍수가 나면서 탄천이 범람하여 사라지게 되었다.
옛날에는 장마철이면 탄천이 넘쳐 논밭이 탄천 속으로 잠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 성현(成俔)이 낙생역 앞에서 "삼대 같은 빗줄기 어지러이 뜰에 들이치누나, 바람에 날린 낙숫물은 창문에 뿌려대네. 홍수가 산골 넘친단 말은 듣기도 시름겹고, 섬돌 가득한 파란 이끼는 보기도 두려워라"라고 읊었다.

 

 
 고려 충정왕 1년(1349) 여름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아버지인 가정 이곡(稼亭 李穀)이 고향인 한산(지금의 서천)에 돌아가는 길에 낙생역(樂生驛)에 머무른 일이 있는데, 이 때 광주목사 백화보(白和父)가 청풍정(淸風亭)이라는 정자를 복원하고 그 사연을 적은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여 이듬해에 올라오면서 글을 쓰게 된 사연을 남겼다.
 
그 시절이 혹독하게 더운 때라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서 숨을 이어가는 것이 실낱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른바 청풍정이라고 하는 곳에 올라가서 기둥에 기대어 옷깃을 풀어헤쳤더니, 정신이 상쾌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것이 마치 매미가 썩은 도랑 속에서 껍질을 벗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온 것만 같았다고 한다. 당시의 광주목은 지금의 하남시 교산동에 있었으니 덕풍천 옆의 작은 언덕이 청풍정 터였을 것이다.

 

 
 낙생지역은 비옥한 곡창지대를 형성하고 있었고 남한산성의 군량미를 보급하는 창고 역할도 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보면 평상시에는 남한산성의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창고를 궁촌(宮村), 경안역, 낙생에 두고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산성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낙생역은 단순한 역원의 역할을 떠나 유사시 국가의 보장처인 남한산성과 함께 유지관리 되었던 것이다. 옛날 서울에서 남부지방으로 내려가는 영남대로의 중심노선이었던 옛길이 더욱 넓어지고 곧게 펴진 것이 경부고속도로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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