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쿠펑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처음 목격한 직원이 당시 여러 차례 화재 사실을 내부에 알렸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덕평쿠팡물류센터 화재는 처음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 내용에 따르면 청원인은 소방서에 최초 신고가 접수됐던 오전 5시 36분보다 10분 전인 5시 26분쯤 1층 심야조 모두 퇴근 체크를 하고 1층 입구로 향하던 중 1.5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아래에서 이미 가득 찬 연기와 어디선가 계속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격했다.
그보다 10분 전인 5시10~15분쯤 이미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평소 화재 경보 오작동이 잦았던 터라 그대로 업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경보 오작동이 아닌 실제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다.
화재 경보는 계속 이어졌고 함께 퇴근하던 동료들도 방화문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을 목격해 곧바로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청원인은 여전히 화재 발생을 모르고 업무를 이어가는 다른 조 동료들에게 뛰어가 “진짜로 불이 났다”고 알렸다.
쿠팡이 물류센터 내에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고 있던 터라 청원인은 무전기와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는 보안요원에게 달려가 화재 발생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보안요원은 “불난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 퇴근이나 하시라. 화재가 발생했더라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청원인은 “연기가 심하다. 뭐하러 장난치겠나. 연기가 심하다는데 확인도 안 하고 왜 자꾸 오작동이라 하는 거냐. 무전기로 보고라도 해 달라. 안에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남았으니 확인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보안요원은 듣는 척도 안 했다.
청원인은 어쩔 수 없이 지하 2층의 또 다른 관계자를 찾아 화재 상황을 알렸으나 그 역시 크게 웃으며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 된다”고 했다.
청원인이 재차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 사람 다치면 책임질 거냐”고 요청했지만 보안 관계자는 웃기만 하면서 “수고하셨다. 퇴근하시라”며 확인 요구를 끝까지 묵살했다.
이후 청원인은 화재 당일인 17일부터 고 김동식 광주소방서 119 구조대장(52)이 숨진 채 발견된 19일까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고 한다.
그는 “물류센터 관계자들을 믿고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하려던 그 시간에 차라리 휴대전화를 찾아 신고를 했더라면 대형 화재로 번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또 3년 전인 2018년에도 덕평 물류센터에서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가득 찰 정도였는데 제대로 된 대피 안내방송이 없었던 일이 있었다며 “한번 겪었는데도 개선된 것이 전혀 없이 참사로 번진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평소에도 정전 등 크고 작은 화재 경보 오작동 외에도 작은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쿠팡 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이 없었다고 청원인은 강조했다.
특히 스프링클러도 오작동이 많다는 이유로 꺼놨으며 화재 당일에도 대피방송이 아닌 노동자들 스스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상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장은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 작동이 8분간 지체됐다”고 밝힌 바 있다.
청원인은 “사고의 정확한 책임을 규명하고 관계자들에 강력한 처벌을 내려달라”면서 “이번만큼은 올바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이를 꼭 시행해 달라. 소방대장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를 두고 쿠팡 측은 “사실관계가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았고, 조사가 진행 중인 부분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경찰·소방 당국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22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6455명의 동의를 얻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