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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21 - 지나간, 어떤 가벼운 추억

지나간, 어떤 가벼운 추억

 

 ‘조선 청년에게’란 시인 한하운의 글은 깊은 실존의 길로 시작하여 결미에서는 마음의 길로 방향을 가르치는 길이었다.

 

길, 땅에서 걷고 종이 위에서 주소로 표기되는 길도 있고 마음속이나 학문탐구의 길, 이렇게 실존적인 것과 비실존, 즉 추상의 길이었다.

 

구약성서 시편 1장 6절의 길은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하여 전도의 길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전도유망함을 길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을까. ‘길은 곧 희망’이기 때문에 생겨난 철학이 아닌가 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 묵객이 이 길을 주제로 쓴 시와 산문이 인생 길잡이로 이용되는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과서처럼 사용되었다.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길에서 외로움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알고 이별과 재회의 반복된 삶을 살아 고뇌하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탄생의 희열이 녹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신앙과도 같은 존재의 길, 그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한없는 평화이기에 더욱 그러하며 빠르지 않고 서둘지 않는 절제된 보폭이 곧 인내로, 곧 태평성대로 표현될 수 있다.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남들보다 늦은 백신 접종 4일째, 잠만 쏟아지며 몸이 끝도 없이 처진다. 옷을 챙겨입고 걷기로 했다. 목적지 없이 발길 닫는 대로 가다 보니 이른 곳이 자유공원이다.

근대에 들어, 아니다. 현대, 현재에 가장 시끄럽게 대두되고 있는 자유공원, 그래 그 지도상의 산 이름 응봉산의 정상의 능선길, 개항과 더불어 다국적 인들의 별장, 양관들로 위용을 뽐내던 그 터가 참으로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던 내 청년기는 저항의식으로 응어리진 투정,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페르소나라는 이유만으로 삐딱한 놈의 상징이 됐을까. 여하튼 이곳에 오면 내장이 불편하였다.

 

‘만국공원’이란 이인석 시가 세상에 나타나더니 이제 각국의 터 쟁탈에서 헤어나니 자유공원인가. 동란 이후 헬기장으로 쓰였고 후에는 연습용 미니 골프장으로 시민들의 터로 이용되는가 했더니 ‘맥 동상’이 자리 하게 됐구나, 상륙작전을 회상하며.

 

광장의 터, 항구를 바라볼 전망창은 좋아졌으나 볼 품새 없이 매점 서너개 뿐, 25년전 뛰어나지는 못해도 경양식집 하나 있어 휴식의 공간이 그럭저럭 몫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제물포 구락부’의 성했던 그 때 그 시절 문화행사 빼고는 지금은 전무 하니 공원의 뇌랄까 머리는 텅 빈 것 같구나.

 

1994년 ‘몸 하나 사랑’을 펴낸 젊은 패러독스의 시인 김영승의 5번째 시집의 출판 기념회가 문학판답게 열렸던 곳, 누구의 발의랄 것 없이 축축하게 젖어온 감동의 그 날은 지금의 출판 기념회에 비하면 가난의 티를 못 벗은 궁티는 있으나 공원길 숱한 나무들의 즐거움이 잎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항구의 불빛 역시 보석인양 반짝거리며 그렇게.

 

다시 능선길 따라 흘러내리는 길 홍예문 주변은 잘 정리된 양옥이 불러낸 골목도 있었지만 가진자들의 향락을 위한 요정, 언젠가 물로 닦은 듯 없어졌다. 그 앞 자그만 홍예문 아파트, 3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남아있다.

 

한 서예가가 어려운 시절 그 아내는 신포동 시장통에서 이불을 팔며 내조하고 혼을 쏟으며 절차탁마한 지족헌(知足軒)의 주인 우보(牛步)의 서실, 그 제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붓끝에 꽃을 피우고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고 이름뿐.

 

송석(松石) 정재흥의 수제자로 누구보다 한글 서예를 위하여 고군분투한 우보 민승기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 ‘금시조’만큼 감동이 밀려오는 이야긴 즉 소장한 전 작품을 기증하고 무소유의 개념을 정립한(?) 서예가 다운 그의 신문기사는 정말 인천인다웠다.

 

홍예문의 층층대를 걸어 내려오는 발길은 늘 그랬듯이 바다에 뜬 불빛의 일렁임이 눈에 박혀 힘이 없다.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중국인 거리’에서 치옥의 언니 매기가 생각나고 “봄이 되면 매기 언니는 미국에 가게 될 거야. 검둥이가 국제결혼을 해 준대”하는 말이 귓가에 맴돌며 ‘에레나’가 되어 천대를 온몸으로 받아낸 ‘미야마찌’의 여인들, 그 시절의 해안동 매기 언니처럼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쓰러지기 전에는 ‘순이’ 였는데.

 

아! 잊을 수 없는 영욕의 추억. /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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