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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18. 세월 따라 변해 온 수정로와 독정천

 

성남시 본도심 일대는 1960년대 말 ‘광주대단지’라는 이름으로 독정천(讀亭川), 단대천, 대원천 주변에 서울 철거민을 집단 이주시키는 인공도시로 조성된 곳이다. 시 승격 후 성남시청이 자리 잡으면서 독정천이 흐르는 숯골 지역이 중심 시가지가 됐다.
 
독정천은 창곡동에서 발원해 한국폴리텍대학, 수정구청, 성남시의료원(구시청), 중앙시장, 태평역을 거쳐 탄천으로 흘러든다. 광주목사를 지낸 청백리 정대년(鄭大年, 1503~1578)이 노년에 은거하여 살면서 정자를 짓고 독서를 했기에 ‘독정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고, 냇물도 ‘독정천’이라 불렸다. 그 주변에 예비군훈련장이 있던 자리가 신흥주공아파트로 바뀌었고 최근 재개발돼 산성역포레스티아가 건설됐다.
 
정대년이 과거에 급제할 때, 원래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황박(黃愽)인데, 고시관 이기(李芑)가 평소에 황박을 매우 미워해 답안지 봉함을 떼어 보고 깜짝 놀라, 이 글은 장원감이 못 된다면서 제2등인 정대년을 장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년은 정언(正言)에 임명돼 곧 이기의 간사함을 탄핵했다. 이기는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서 이런 일에 이르렀구나. 차라리 황박을 장원시킬 것을…" 하고 탄식했다.
 


독정천은 냇물을 사이에 두고 버드나무가 늘어선 옆으로 차량이 오고 가다가 1985년에 복개됐고,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다가 지금은 수정로(壽井路)가 됐다. 독정천은 3단계에 걸쳐 복개되었다. 1차는 성남초~태평사거리, 2차 한국폴리텍1대학 성남캠퍼스~성남초, 3차 태평사거리~탄천 순으로 복개가 진행됐다. 복개 당시 지하에 민간이 운영하는 지하상가를 계획, 추진했으나 흐지부지 됐다.

 


독정천 1차 복개 후 만들어진 길은 대붕로(大鵬路)라 이름 지어 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대봉로(大峰路)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가 시 승격 전에 출장소장의 이름에 峰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출장소장 퇴임 후 다시 대붕로로 환원됐는데 박봉휘(朴峰輝) 시장 때 다시 대봉(峰)로가 됐고, 이봉학(李鳳學) 시장 무렵에는 대봉(鳳)로가 됐다가 1984년 大峰路, 1987년 大鳳路 등으로 변하였고, 지금은 남한산성공원 입구까지 연장된 구간이 수정로가 되었다.


시 승격 초기 시청 자리는 인하대병원 그리고 한미병원에 이어 지금은 이마트가 영업 중이다. 성남시청이 이마트 자리에서 1983년에 지금의 성남시의료원 자리로 옮겨 간 후 성남에서 제일 먼저 신호등이 이곳에 생겼다. 독정천 복개 전엔 태평동에서 수진동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멀리, 다리가 놓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수진동 방향 1차선 도로에 사고라도 날라치면 승객을 실은 버스는 뒷편, 마을길로 다녔다.  탄천 유입 직전 삼부아파트 자리에는 신풍제지 공장이 있어서 성남지역에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70년대 초반까지도 독정천은 깨끗한 물이 흘러 주민들은 개천에 돌우물을 만들어 식수로 사용하거나,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급증한 인구, 생활하수 방류로 물은 탁해지고 세제(퐁퐁)물 거품이 일어 악취가 심해졌다.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한강 오염의 원인을 성남시 하천 중 ‘독정천’과 ‘단대천’에서 흐르는 죽은물, 혹은 썩은물 탓이라고 보도했다. 이제는 맑아진 탄천, 버드나무 늘어서 있던 독정천 옛 모습이 그립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