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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21. 군사문화의 역사현장을 흐르는 창곡천

 

창곡천 역시 남한산(청량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가마골에서 발원해 군사시설인 사격장 사이를 지나 원주민 마을과 국군체육부대를 곁에 두고 흘렀다.


남한산성에 보급할 군량미 등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창말’, ‘창곡(倉谷)’ 마을을 흐르기에 창곡천으로 불린다. 위례신도시 개발 이후 창곡동 지명은 법정동으로 남아있고, 행정명은 위례동이 됐다.
 
옛날 한강 남쪽 일대는 군사훈련장이었는데, 창곡동 지역은 조선시대에 교장대(敎場臺)라는 군사 지휘소가 있었다. 1896년 남한산성 의병을 토벌한 일본군이 매착리에 진을 쳤고,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이 주둔했다. 일본군 막사는 광복 직후 헐어서 둔전교회 건축에 사용됐다. 1962년부터 1985년까지 ‘희망대’라고 불리는 국군교도소가 있었는데 정승화, 김재규 등 10.26사건 관련자들과 계엄령 하에서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이 수감됐었다.

 

 
창곡동에는 국군체육부대(상무대), 행정학교, 문무대, 훈련장, 복지근무지원단, 군사문제연구소, 국방전직교육원, 군인아파트 등 각종 군사시설이 있었고, 인접지역인 장지동이나 거여동 일대에도 특수전사령부 등 군사시설이 많았다.

 

 
가마골에서 발원한 창곡천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가늠하긴 어렵다. 예전에 사격장이었던 대원사 옆에서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창곡천 우측에 있던 야산이 깎여지고 주민들이 거주하던 마을은 30m 가량 복토 돼 자연형태의 물길은 땅 속 깊숙이 숨겨졌다. 주거권리 등을 주장하지 않던 시절의 주민들은 사격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숙명인 듯 받아들이며 살았다. 개발 전 창곡동엔 창말, 간이골, 매착리, 진터벌 등의 마을이 있었고, 창곡천은 창말에서 시작해 매착리를 지나 복정동에서 탄천으로 유입되는 시골 풍경을 가진 하천이었다.

 

 
대원사를 지난 물길은 위례 근린공원과 59단지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왼쪽에 위례한빛고등학교 자리는 산과 논이 겹쳐진 곳이었다. 우측, 위례파출소 근처는 군인아파트와 기숙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터로 비어있다. 연애 중인 청년들은 애인한테 목걸이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격장으로 빈 탄환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군인아파트 옆 창말에는 식당 등 약 30호의 원주민이 거주했다.
 
논이었던 곳에 밀리토피아호텔이 생겼고, 맞은편으로는 위례고은초등학교다. 학교 아래로는 학생군사학교인 ‘문무대’가 있었다. ‘수변역사공원’이 펼쳐진다. 냇물의 흐름은 여전히 탄천으로 이어지지만 도시 경관을 위해 담수호가 조성되어 수변공원이 조성됐고, 과거 시냇물 정도의 흐름으로는 부족한 물의 양을 채우기 위해 하류(탄천)의 물을 끌어 올려 다시 내려 보낸다.  옛날의 이 길은, 남한산성 내에 살던 주민들의 보부상 행렬과 소를 팔기 위해 마장동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이어지던 길이다. 정조임금 등 역대 임금들이 여주의 세종과 효종 능에 참배하러 오갈 때 지나기도 했다. 

 


좌측에 있는 ‘서일로마을’은 야산이 있던 자리로, 원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이주자택지로서, ‘이택지’라 부른다. 위례중앙초등학교와 31단지 아파트가 있는 곳은 국군체육부대가 있었다. 송파권역 공영버스 차고지를 지나면서 창곡천은 복정동에서 내려오는 복우천과 합류하며 위례신도시를 벗어난다. 신도시를 벗어난 물길에는 아직까지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고, 잘 조성된 자전거길과 함께 창곡천은 탄천을 향해 흐른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