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음식값과 자릿세를 내고 이용하던 계곡을 공짜로 이용하니 느낌이 새롭네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는데 올해는 비용 부담도 없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동막계곡. 과거 계곡 주변을 점령했던 천막과 평상, 방갈로 등 불법시설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음식점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공공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은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 그늘막을 치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어린아이들은 물놀이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한 부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다른 가족은 집에서 챙겨온 음식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음료를 마시며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여유가 넘쳐났다.
공공주차장으로는 연신 차량들이 들어섰다. 수영복 챙겨 입은 사람들은 차량에서 튜브 등 나들이 용품이 꺼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같은 날 오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의 백운계곡. 불법시설물로 뒤덮였던 계곡은 언제 그런 시설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았다.
2년 전만 해도 3.8㎞ 구간 계곡에 2000여 개의 천막, 평상, 방갈로 등이 설치돼 있었던 백운계곡은 음식값과 별도로 자릿세를 내야만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계곡 주변으로 900여 개의 공용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 등이 설치돼 있었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행락객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낡고 허물어진 제방은 보수됐고, 계곡 곳곳에는 추락 방지를 위한 난간과 계곡으로 편히 내려갈 수 있도록 안전계단이 설치됐다. 가족과 추억을 남기는 포토존도 마련돼 있었다.
계곡물에서는 튜브를 탄 아이들이 부모와 물놀이를 즐기며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파라솔에서는 챙겨온 음식을 먹는 행락객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의정부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모(41‧여)씨는 “예전처럼 자릿세와 음식값 등 바가지요금 없이 계곡을 이용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흐뭇해했다.
서울에서 온 김모(48)씨도 “비용 부담 없이 탁 트인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장소 선택을 잘 한 것 같다”면서 “서울만 해도 식당을 이용하지 않으면 계곡도 이용할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 234개 하천·계곡, 불법시설물 99.7% 복구
경기도의 ‘하천·계곡 청정복원 사업’이 시행 2년 차를 맞은 가운데 수십 년간 경기지역 하천과 계곡을 불법 점령했던 시설물들은 현재 자취를 감췄다.
하천‧계곡 청정복원 사업은 민선 7기 경기도가 출범하고 시작됐다. 2019년 6월부터 25개 시‧군 234개 하천‧계곡에서 1601개 업소의 불법시설물 1만1727개를 적발했다. 이 중 1578개 업소의 불법시설물 1만1693개를 철거해 99.7%의 복구를 완료했다.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원칙을 중시하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설득이었다.
청정계곡 복원사업을 추진할 당시부터 경기도는 업소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업소들은 길게는 수십 년간 영업을 해왔는데 왜 갑자기 다 철거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이 지사는 반발하는 업소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지원 방안을 제시하는 등 공감대를 쌓아가며 업소들의 자발적 철거를 이끌어 냈다. 철거를 거부한 일부 업소에 대해서는 행정소송, 대집행 등 법을 통해 강력하게 대응했다.
결국 설득과 보상, 단호한 행정집행을 통해 ‘깨끗한 하천 계곡을 도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이 지사의 정책의지가 실현된 것이다.
앞서 이 지사는 “계곡 불법 시설물 철거는 당연히 해야 하고, 법대로 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 질서가 잘 지켜지고 공정한 환경이 되도록 공공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하천‧계곡 불법시설물 정비’…경기도가 전국 ‘최초’, 서울‧강원은 ‘골머리’
불법시설물로 뒤덮였던 하천‧계곡을 복원한 것은 전국에서 경기도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행정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도 없다.
경기도의 청정계곡 복원사업으로 1,348만여명의 도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게 됐다. 자연도 깨끗해지고, 수해 피해 감소라는 망외소득도 얻었다.
반면, 서울과 강원의 경우 음식점들의 불법 영업으로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름 피서철을 맞아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상황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북한산 우이동 계곡, 은평구 삼천사 계곡 등 9곳을 대상으로 집중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 계곡은 음식점의 사유시설이 된지 오래다. 단속과 처분이 ‘연례행사’처럼 여겨지면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업소들이 점유한 하천‧계곡은 국가 또는 자치단체 소유다. 국유지와 시유지에서 매년 사적 영업행위가 이루어지는 셈인데 한철 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다 보니 포기하기도 힘들다.
강원도 화천의 광덕계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 구간 계곡에는 매년 200여 개의 불법시설물이 설치된다.
업소에서 음식을 시켜 먹지 않으면 계곡 이용도 못한다. 계곡 주변을 철조망 등으로 막아놔 업소를 통해서만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 광덕계곡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관계자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계곡을 통제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넘쳐난다”며 “계곡의 관리는 나라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상인들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기도가 추진한 청정계곡 복원사업 대해 도민 상당수는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9월 1천명의 도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97.7%가 ‘잘했다’라고 응답했고, 이유에 대해서는 40.1%가 ‘자유롭게 계곡을 이용할 수 있게 돼서’라고 답했다.

◇경기도, 불법행위 적발 즉시 대집행…‘넘치는 쓰레기’ 시민의식은 제자리
서울과 강원의 경우 하천과 계곡에 설치된 불법시설물이 적발될 경우 ‘자진철거’ 명령 정도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인 반면, 경기도는 강력한 행정조치로 대응한다.
최근 양주 장흥계곡에서 불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경기도는 관할 자치단체와 함께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공무원, 하천지킴이 등 40여 명을 투입해 수중펌프를 이용한 분수대, 물막이 등을 모두 철거했다. 또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도내 모든 하천‧계곡에 대한 점검과 하천지킴이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처럼 경기도의 청정계곡 복원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행락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쓰레기가 넘쳐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쓰레기 되가져가기’ 등 각종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천지킴이로 활동하는 함모(60)씨는 “복원을 통해 하천과 계곡은 깨끗해졌는데 이용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많아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심지어 가구도 버리고 가는 이용객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곡 정비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시민의식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등산과 마찬가지로 시민의식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만 편하면 되지’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불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절대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과 동시에 쓰레기 발생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며 “우리 가족이 이용하는 하천‧계곡인 만큼 이용객들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경기신문 = 고태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