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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저작권 인정 첫 판결] ③표현상 규제 구속 없으면 창조물

종교화 ‘법식(法式)’ 논쟁 종지부 의의
항상 그리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보편적 규범 아니다
획일화된 표현 법칙 아닌, 작가의 창조적 개성 인정

 

 

지난 6월 3일 대법원 상고기각 결정에 따라 종교화로선 처음으로 저작권을 인정받은 ‘문수보살36 화현도’는 종교화의 ‘법식(法式)’에 관한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작가가 특정한 불교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지라도, 제작 과정에서 규제 구속이 없으면 창작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까닭이다.

 

경기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장 이수자인 도야 김현자 선생이 제기한 ‘문수보살36 화현도’에 대한 저작권법위반 소송에서 주요 쟁점은 종교화의 법식에 관한 것이었다. 

 

당초 피고 측은 종교화로서의 불화는 시각적인 경전으로, 불교의 교리를 전달하기 위해 ‘법식’이라는 특수한 규범에 의해 제작, 기존 도상(圖像)들의 이미지를 차용 또는 모방해 그릴 수밖에 없어 작가의 창작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독창성이 있는 제작기법이나 표현 형식이 없어 원 저작물로서는 물론 2차적 저작물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우선 기존의 불화나 도상들의 답습이라고 느끼게 할 만큼 표현방식을 철저히 통제하는 ‘법식’이라는 것이, 모든 불화를 제작할 때 항상 그리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보편적 규범으로 존재한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통 불화를 그릴 때 ‘어떤 대상은 획일적인 형상 또는 색채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표현상의 규제(제약)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적은 있다 하더라도, 확고한 규범으로 자리 잡지 않은 이상 ‘법식’으로 평가할 순 없다고 판시했다.

 

즉, 작가가 어떤 대상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표현상의 규제에 구속되지 않고, 형상과 색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선택이 누구나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이상 그 결과물은 창작물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림이 ‘법식’을 따라야 하는 불화라는 사실만으로 일률적으로 창작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불화에 작가의 창작성이 담겨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별 그림의 주제, 그림의 소재나 대상 등을 표현하기 위한 ‘법식’이 존재하더라도, 작가가 이를 그대로 답습해 기존의 불화를 재생산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법식’의 테두리를 벗어나 정신적 노력의 소산을 담았는지를 살펴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김현자 선생의 ‘문수보살36 화현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할 별도의 ‘법식’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 그렇다 해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창작성을 발휘할 여지가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매듭지었다.

 

예컨대, ‘법식’으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요소들, 가령 보살들의 배치 형태 또는 사자상에 앉아 있는 문수보살 등은 이전에 존재했던 불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획일화된 표현 법칙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적 개성이 개입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한편, 김현자 선생은 한 유명 사찰에서 창건설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1년 6개월여에 걸친 노력 끝에 작품을 완성, 다른 절에서 매우 유사한 작품을 보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고 장장 4년 9개월 만에 승소하며 그 권리를 확정 받았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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