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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의 인천얘기 22 - 국립인천해양박물관

 박물관이 한 나라 또는 도시에 주는 의미와 상징성은 지대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박물관(博物館)의 한자 뜻 그대로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놓은 곳’이라는 풀이와 달리 그곳은 해당 국가나 민족,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혼이 집약된 공간이다. 정신의 결정체요, 땀이 흠뻑 배인 노력의 산물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H.카의 말처럼 박물관은 또 현세의 우리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살았던 조상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유물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궁하고 장중하다. 책, 문서 등 역사기록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정치상황 등에 따라 얼마든지 위·변조나 왜곡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물은 거짓이 없다. 켜켜이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내력은 우리에게 늘 크나큰 울림으로 자리한다.

 

20~30년 전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세울만한 이렇다할 것이 없었던 시절, “나라 밖에 나가 보면 코리아는 몰라도 △△, ×× 등 한국 기업을 아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은데 놀라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국격(國格)을 높이는 매개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때 우리나라처럼 세계 일류급 기업을 비롯해 민주적인 정치, 공정한 사법제도, 역사문화유물, 음악, 문학작품, 관광인프라, 사회간접자본(SOC) 등이 포함된다.

 

박물관도 그 중 하나다. 아주 중요하다.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뉴욕메트로폴리탄, 베를린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미르타쥬. 이름만 들어도 부럽고 존경스럽고 한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글쓴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 유수의 나라들이 유물을 발굴하고, 사들이거나 기증받아 박물관을 세우고, 관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에는 이처럼 그만한 이유가 있다.(문화재 약탈의 역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museum’은 학술과 예술을 관장하는 그리스 여신들을 뜻하는 말 ‘무사이’에서 나온 ‘무사이온(mouseion,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학술원)’으로부터 비롯됐다. 유래를 따지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museum’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방대한 양의 소장품들이 연구·정리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고고학박물관이나 문화사박물관의 토대가 갖춰진 게 이 때다. 현대적 개념의 박물관은 17세기 유럽에서 발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적 성격의 첫 박물관은 제실(帝室)박물관이다. 당초 1907년 순종 황제가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는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황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창경궁 전각을 이용, 동·식물원과 박물관이 건립된 것이 시초로 1909년 일반에 공개됐다. 이왕가 박물관, 이왕가 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으로 개편됐다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됐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다음달 착공된다. 1036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해양박물관은 중구 월미도 갑문매립지에 들어서 오는 2024년 개관 예정이다. 2002년 국립해양과학관(오션피아)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이 마련됐던 이래 실로 20년 만의 결실이다.

 

우리나라 국립해양박물관은 부산이 유일하고 고성 화진포해양박물관, 서천 해양생물자원관, 목포 해양문화재연구소 등 관련 시설도 모두 지방에 있다. 국내 대표적 해양도시인 인천이 오랜 기간 해양문화시설 유치에 힘을 쏟아온 이유다.

 

이제 3년 뒤면 인천시민들의 오랜 숙원이 이뤄진다. 주지하다시피 박물관의 생명은 유물이다. 인천은 해양문화와 관련해 국내 그 어느 곳에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오래고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1500여 년 전 백제의 대중국 바닷길의 관문이었던 능허대가 있었고, 인천앞바다 섬들은 기독교(基督敎)와 유배(流配), 항쟁(抗爭), 파시(波市), 풍어제(豊漁祭)와 뱃노래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선박하역작업이 처음 시작되고, 동양 최대 규모이자 한국 최초의 항만시설(갑문)이 조성되고, 한때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웃도는 소금을 생산했던 광대한 천일염전이 첫 선을 보인 곳도 바로 인천이다. 다양한 유물과 그것을 엮어내는 스토리가 풍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천에는 국립해양박물관에 앞서 내년 상반기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문을 연다. 프랑스와 중국에 이은 세계 3번째다. 시립박물관과 한국이민사박물관, 선사박물관 등 기존 박물관들과 연계하고 인천 만의 특징을 나타내는 차별화된 콘텐츠, 대중들을 위한 전시·교육프로그램이 활발히 이뤄진다면 인천이 조만간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 도시’로 성큼 나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1990년대 중반 무렵 북유럽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근교의 바이킹박물관에서 본, 1000여 년 전 바이킹족들이 타고 해양을 누볐던 선박의 기억이 20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오랜 시간 바다 속에 있어 형체는 온전하지 않았지만, 그 배를 마주했을 때 받은 감동은 여전히 나의 가슴 한 구석에 강렬함으로 자리하고 있다. ‘노르웨이’ 그리고 ‘오슬로’와 함께. /이인수·인천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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