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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마라. 부름에 답하는 자가 되라

㊴ 듄 - 드니 빌뇌브

 

영화 ‘듄’은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작품이다. 아라키스/아트레이데스/하코넨/프레멘/스파이스/베네 게시리트 등 생소하고 외우기도 힘든 이름들이 계속되는데다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끝을 향해 달려가는지 러닝 타임 155분이 다 돼 가도록 도저히 짐작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원작소설이 지닌 방대함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문명은 그것이 문학이 됐든 음악, 미술, 사진 혹은 그 무엇이 됐든 거의 대부분이 1960년대에 이루어지고 완성됐음을 이 소설은 다신 한번 웅변하고 있다. 인간의 지성은 60년대가 최고조였던 듯이 보인다.

 

이 영화를 따라가기 힘들게 하는 요소 가운데 또 하나는 등장인물,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면면 때문이기도 하다. 티모시 샬라메와 레베카 퍼거슨을 중심으로 오스카 아이작/조슈 브롤린/제이슨 모모아/스텔란 스카스카드/하비에르 바르뎀/장첸, 심지어 샬롯 램플링까지 배우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어떤 이는 많은 분량에 또 어떤 배우는 작은 역으로 나왔다가 사라진다. 예컨대 프레멘의 지도자 격 인물로 비중은 크지만 출연 씬은 그다지 많지 않은, 비교적 작은 역에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대배우가 초반에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물론 영화 후반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등등이 영화의 스케일이 엄청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의 얘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영화를 리뷰로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앞의 얘기들은 어쩌면 그 변명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알기 쉽게 스토리를 풀어 보면 이렇게 된다.

 

우주의 행성들은 황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주요 세력이 大귀족연합이고 귀족들은 각각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바, 양대 가문이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이다. 각각의 지도자는 레토 공작(오스카 아이작)과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인데, 어쩌면 이 둘은 우주의 선과 악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공작의 정부(情婦) 레이디 제시카가 속한 기이한 여성 집단 베네 게시리트族의 행태가 뒤얽히고 그것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신비롭게 만든다.

 

어쨌든 이야기의 중심은 우주에서 가장 쓸모없이 보이는 사막행성 아라키스이다. 아라키스는 매우, 그것도 매우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서만 유일하게 스파이스라는 물질이 채굴되기 때문이다. 스파이스는 (대마초나 아편 같은) 일종의 각성제이자 정신 지배물질(소설에서는 기본적으로 향신료처럼 묘사된다.)이다. 인간의 수명을 늘려주고 예지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스파이스를 잘 활용하면 인간은 정신을 통해 물질을 지배하고, 의식 속에서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를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런 자를 ‘퀴사스 해더락’이라 부르며(영화에서는 끝부분에 잠깐 언급된다.) 영화 속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그런 그를, 우주를 구원할 메시아쯤으로 받아들이고 기다린다.

 

 

영화는 주인공인 폴 왕자(티모시 살라메), 곧 아트레이데스의 레토 공작과 레이디 제시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그런 인물일지 모른다는 것을 줄곧 암시한다. 베네 게시리트 출신인 레이디 제시카는 아들 폴에게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능력을 훈련시키는데 그중 하나가 ‘보이스’다. 목소리로 상대의 심리를 제압해 그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종의 염력술이다. 이 ‘보이스’ 기술은 나중에 모자를 살려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영화 ‘듄’의 복잡한 스토리는 하나로 귀결된다. 아라키스 행성의 스파이스 채굴을 둘러싸고 간교한 황제가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 간에 전쟁을 벌이게 만들어 이들을 분할 통치(divide and rule)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트레이데스는 거의 궤멸된다. 그리고 그것이 황제의 목표였다. 아트레이데스의 세력이 너무 커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 폴은 어머니인 레이디와 함께 아라키스의 유목인이자 원주민인 프레멘과 손을 잡고 대항 반군을 키우게 된다. 그건 아버지 레토 공작의 계획이자 염원이기도 했다. ‘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방대한 SF 서사는 아무리 그것이 갖는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해도 그 이야기의 깊이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굴착해 내면 전체의 얼개가 비슷하게나마 인지되고 인식된다.

 

 

‘듄’은 세 가지쯤의 현실적 상황을 오버랩 시킨다. 그건 일단 프랭크 허버트가 이 원작을 세상에 내놓은 1965년을 상정시키면 된다. 당시 세계는 오일 폴리틱스(oil politics)의 정쟁으로 나아가던 시기였으며 급기야 1973년에 이르러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갈등의 격화로 아랍권 전체가 관여된 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1차 오일 쇼크가 터지던 시기였다.

 

영화 ‘듄’의 생명물질인 스파이스는 아마도 오일 경제학의 세상에서 연유된 상상력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듄’의 분위기는 석유전쟁의 전조로 불안해하던 세상의 느낌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이 베두인족(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민족)처럼 묘사돼 있는 것, 그들의 종교(처럼 보이는 것)가 예수 그리스도나 알라를 암시하는 메시아론처럼 그려지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프레멘들의 어법은 거의 성경 구절에서 가져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문화양식, 그에 대한 상상력도 상당부분 섞여 있는데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주치의가 유에(장첸)라는 이름의 중국인(처럼 보이는 인물)으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폴의 엄마 레이디 제시카가 속한 여성집단 베네 게시리트는 상당히 무협지적 요소를 띤다.

 

 

강호의 세상에도 9대 문파가 있고 유일한 여성파인 아미파가 있는데, 탄지신공(彈指神功)으로 유명한 이 여성 고수들은 무림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지니는 데다 종종 남자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베네 게시리트는 아미의 서구적 표현처럼 느껴진다. 이건 다소 과도한 ‘접붙이기’로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가 꽤나 아시아적 느낌을 준다는 얘기이다.

 

‘듄’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얘기이다. 레토 공작은 아들 폴에게 말한다. “무릇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려는 자가 아니라 부름을 받는 자이다.” 이건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앞세우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영화 속에서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전 우주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지금의 세상에서 일부 강국들이 석유나 군사력, 고도의 첩보능력을 앞세워 세계를 통치하려는 모양새와 닮아 있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10191년인데 이것도 서기(A.D.)가 아니다. 우주력이 적용되는데 실제로는 26000년이다. 지금은 2021년. 2만4000년 후의 세상을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니 소설이든 영화든 ‘듄’은 결국 그렇게 먼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는 척, 사실은 지금, 당장의 세상을 얘기하려 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듄’에는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공지능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거의 그런 수준으로까지 도달했는데 그건 고도의 정신력을 키우고 훈련해 냈기 때문이다.(소설에서는 마치 1800년대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 로봇을 전량 파기한 것처럼 묘사된다.) 정신이 물질과 세상을 통제하고 지배하되 여성이 그걸(안 그런 척) 주도해 내는 세상. ‘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관이다. 이게 핵심이다.

 

온갖 추잡한 스캔들이 난무하는 한국의 사회정치 현실에서 ‘듄’은 ‘심오한 각성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결국 정신이 이긴다. 물질이 아니라. 결국 도덕과 정의가 이긴다. 땅 투기 부자와 비뚤어진 권력욕이 아니라. ‘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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