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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세상은, 상상력이 바꾼다

㊶ 그림자꽃 - 이승준

 

고만고만하고 비교적 평범한 탈북자의 얘기처럼 느껴지던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러닝타임 38분쯤부터 급물살을 탄다. 이 다큐의 중심인물인 김련희(53)가 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을 ‘치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련희는 베트남 대사 측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다. 자신을 제발 북한으로 돌려 보내 달라는 것이다. 남한 정부가 자신을 억류하고 잡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꽃'은 탈북자 여성의 얘기가 아니다. 평양 시민으로 살아가던 한 여성이 어찌어찌 해서 남한까지 흘러 들어 왔는데 당초에는 순진하게도 다시 북으로 돌아 갈 거라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모든 일의 뒤틀림이 시작됐음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김련희는 여전히 자신을 탈북자가 아닌 평양시민이라 주장한다.

 

남한은 그런 그녀를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행위자로 간주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때리기까지’ 했다. 그녀에게는 보호관찰관이 따라 다니고 일주일에 한번 씩, 혹은 수시로, 그녀가 자신들에게 출두하기를 요구한다. 남한에서 김련희가 살아가는 삶은 한 마디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녀는 북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문재인 정부 하에서조차 출국금지 연장은 계속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 분이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의 신분으로 돼 있기 때문에 엄정하게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김련희는 천신만고 끝, 7년 만에 자신의 여권을 되찾지만(대한민국 여권을 발급받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다. 내용상으로 그녀는 여전히 남한에 억류된 채 살아 간다.

 

 

'그림자꽃'은 남북한 문제, 분단의 오랜 역사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독재정부가 됐든, 권위주의 정부가 됐든, 심지어 민주정부가 됐든 남북 문제는 쉽사리 풀리지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고 민간 교류를 확대하고 등등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척 사실은 양측 모두, 특히 남한 측이, 심각한 관료주의의 덫에 걸려 있음을 보여 준다.

 

기득권을 위해 자행되는 탈법과 불법을 모두 묵인하면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문제, 곧 ‘인간이 먼저’인 문제에 대해서는 늘 엄정/공정/중립이라는 법의 잣대를 들이 댄다. 남이나 북이나, 분단의 현실을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이 피곤하고, 구차하고, 남루해지는 이유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돌아가고 싶은 사람, 혹은 돌아 가야 할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자유롭게 놔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가장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본의 행태 아닌가, 라는 질문을 이 다큐는 시종일관 담아 내고 있다.

 

어쩌면 이 다큐도 김련희가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동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련희는 정말 안하는 일 없이 해 내며 살아 간다. 일상의 노동 틈틈이 UN인권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남한 측 사회운동가, 액티비스트들과의 만남도 자주 가지며, 같이 남한에 들어온 ‘(감)빵동기’들도 만나 방법을 의논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기거하는 ‘쉼터’같은 곳에서 같이 살기도 한다.

 

 

장기수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가슴 쿵’하게 만든다. “여기 온지 얼마됐어요?” “61년에 왔으니까 뭐…” “감방에서는 얼마 살았어요?” “27년인가…88년에 나왔으니까.” 이제는 완벽하게 서울 말씨를 쓰는 이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지켜 보면서 김련희는 동병상련을 느낀다. 그 노인처럼 자신 역시 앞으로 오랜 세월 영어(囹圄) 아닌 영어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 죽고 둘만 남은 비전향 노인들은 그런 김련희를 늘 걱정하고 아껴 준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매우 웅변적이다. 이들의 삶에 해법을 찾아 내는 것이 그 어떤 남북합의문이나 선언보다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범인(凡人)의 눈으로 봤을 때 다큐 '그림자 꽃'은 실로 놀랄 만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무려 7년을 찍은 영화다. 김련희가 남한으로 들어 와서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추적해 왔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푸티지(footage)가 거의 없다. ‘생짜로’ 다 직접 찍은 분량들이다. 심지어 더 놀라운 것은 김련희가 ㈜한국 베트남 대사관에 ‘주거침입’을 한 이후 감독 이승준의 카메라가 북한으로 직접 간다는 것이다. 북한에 가서 김련희의 딸 리연금도 만나고 김책공업전문대학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도 만난다.

 

'그림자꽃'은 그렇게, 약 105분의 영화를 찍기 위해 7년의 공을 들인 작품이다. 허울뿐인 남북한 통일 논의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치환시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노력 쯤이야, 하는 생각이 읽혀진다. 김련희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7년 넘게 기다려 왔는데 뭘요…" 남북한도 어쩌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 가는 걸 70년 가까이 기다려 온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 보니 남북한이 같이 살려면 결국 따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깊이 느끼게 된다. 남북은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그렇게 됐다. 김련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남한에서 쓰는 노후 보장이란 말이나 평생행복주택 같은 말이다. 왜 노후를 걱정하며 내 집 마련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해줘야 하는 일 아니냐고 그녀는 말한다. 도로통행요금을 내는 것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멀쩡한 도로를 이용하는데 왜 돈을 내냐고 그녀는 의아해 한다. 오랜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았던 사람은 오랜 자본주의 국가의 운영방식은 받아 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건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쪽 남한에는 극악한 반공주의자들이 넘쳐나는 판국이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라도 양측은 쉽게 합쳐지기가 힘들다. 영화에서도 남한 내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이 벌이는 사생결단의 반북(反北) 행동들이 열거된다. 보기가 참으로 불편하다. 민망하고 불쾌하다.

 

리처드 기어,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자칼'이나 한석규 하정우 주연의 '베를린'같은 첩보영화에서 정보국 요원은 붙잡은 상대편 첩자를 이런 식으로 놓아 준다. “나 저기 있는 화장실에 좀 갔다 올께. 한 10분 걸릴 거야. 알았지? 한 10분 걸릴 거라구.” 그는 그렇게 상대의 도주를 묵인한다. 우리 정부도 김련희 같은 여성에게 이러면 안될까. “잠깐 북에 갔다 오세요. 잠깐이에요. 우리는 당신에게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알았죠?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런 식으로 돌려 보내면 안될까. 영화든, 현실이든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상상력이 바꾼다. 이건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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