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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孤聲)]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세계 2차 대전 말기 독일의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유대인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강제 노역을 나가는데 수용소 내의 간호사가 그를 불렀다. 그녀를 따라간 비젠탈은 전쟁의 폭격으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나치 친위대(SS) 병사의 임종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죽어가기 직전의 친위대원은 자신의 악행을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유대인 ‘아무나’가 필요했고 그날 지목되어 온 ‘아무나’가 비젠탈이었다. 친위대원이 고백하는 내용은 유대인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밖으로 뛰쳐나오는 유대인들에게 총을 난사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행위로 인해 많은 번민과 고통 속에 있다가 이제 죽기 직전에 유대인에게 고백함으로써 용서를 받고자 한 것이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비젠탈은 고민했다, 죽기 직전의 그에게 용서한다고 말해서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동족을 무참히 죽인 그 나치를 여전히 증오해야 하는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실은 나온 비젠탈은 자신의 대응에 또 다른 번민에 싸였다. 전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자유를 얻은 비젠탈은 자신의 고민을 주변에 이야기하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질문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비슷한 시기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역시 기적적으로 생존했던 유대인 출신의 작가이자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그 친위대원의 고백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며 그의 행위는 오로지 자신의 죄를 면책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즉 그를 용서해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한다는 것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인간성)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지난주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서 벌어진 야당 대통령 후보의 사과가 있었다. 전두환 두둔 망언과 개 사과로 인한 광주시민들의 분노에 용서를 구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무언 시위를 하기로 했던 광주시민들과 후보자 경호팀의 충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결과를 야기하고 말았다. 준비한 사과문이라는 것을 낭독하고 후보자는 떠났다. 전두환을 비판하거나 5·18 정신에 대한 훼손 금지 등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건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자신만을 위한 사과라는 요식행위 같았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용서 그리고 눈물의 화합이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상상했지만, 오히려 상처가 덧나고 말았다. 그는 그날 목포에서 환영객과 함께 폭탄주를 나누었다고 한다.

 

용서해주어선 안 된다고 했던 프리모 레비는 자살로 생을 마쳤고, 비젠탈은 나치사냥꾼으로 탈바꿈하여 전 세계에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던 나치 전범 1100여 명을 체포해 법정에 세웠다. 지금도 그가 건립한 비젠탈센터는 숨어있는 나치를 찾아다니고 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비젠탈이 쓴 책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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