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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를, 개들의 힘으로부터 구해 주소서

㊺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일별(一別)만 가지고 영화를 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럴 수 있는 영화가 있고 그럴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제인 캠피온의 역작 ‘파워 오브 도그’는 그럴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장대하면서도 웅장한 작품은 펄 벅의 ‘대지’를 연상시키게 하면서도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무엇보다 제임스 딘의 유작(遺作)이기도 한 ‘자이언트’를 연상시킨다. 한편으로는 이안 감독이 만든 ‘브로크백 마운틴’을 닮았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걸작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미국이 어떻게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갔는지, 그 과정에서 이른바 대규모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 이른바 부호와 상층 부르주아의 탄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이 영화 ‘파워 오브 도그’도 위대한 미국 현대사이면서 기이하게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핏빛의 음모, 치정, 살인의 냄새를 가득 풍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영화를 합친 느낌이 난다. 그것도 매우 도발적으로.

 

무엇보다 매우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무릎을 친다는 것은 단순한 수사학(修辭學)이 아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결론은, 보는 사람들의 뒷통수를 가감없이 정통으로 때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말 한마디 한마디, 대사 하나 하나가 다시 떠오른다. 복기(復記)에 애를 쓰게 된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 한 번이 아니라 다시, 그리고 또다시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 이유는 모두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흘러간 장면에 담겨져 있는 알레고리들을 찾고 싶은 욕구가 일기 때문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그런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토마스 새비지가 쓴 1967년의 소설이 더욱 심오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한다. 영화와 문학이 만나는 수평선의 그 지점이 궁금해진다.

 

 


‘파워 오브 도그’는 토마스 새비지의 자전적인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아이다호 주의 유명한 양 목장 집 맏아들로 태어난 새비지는 어릴 때 이혼한 어머니가 몬태나의 부유한 목장주와 결혼하면서 서부 개척형 대재벌의 집안에서 자랐고 이것이 훗날 ‘파워 오브 도그’의 원천이 됐다. 그는 작품 속 피터처럼 게이이다. 커밍아웃은 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제시 플레먼스) 형제는 몬태나 버뱅크에서 소 천 마리를 키우는 목장주이다. 그 설정 하나만으로 이 소설과 영화가 얼마나 광활하면서도 동시에 척박하고 황량한 심성의 배경을 갖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 준다.

 

필은 완벽한 상남자이다. 목장 일에 대해서는 버뱅크가(家)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지극히 마초(macho)적인 캐릭터로 모든 목동의 우두머리이자 황야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일깨워 주는 리더이다. 그는 성격이 불 같고 지독하며 못돼 ‘처먹었지만’ 오로지 동생 하나만큼은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생 조지는 필과는 천양지차의 성격이다. 외모도 형인 필은 날렵한 근육질인 데 반해 동생은 다소 둔하게 생겼다. 그러나 착한 심성, 인내심이 강한 성격 등등은 오히려 집안 내부를 꾸려 가는 데 적합한 캐릭터이다. 실제로 소 천 마리를 키우고 사고 파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며 특히 몬태나의 목장 일이 기업형이 되어 가는 데 있어 조지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십, 수백의 직원들을 건사하는 것도 오로지 조지 몫이 되어 간다. 필이 봉건주의라면 조지는 자본주의다. 그렇게 양 체제를 대변한다.

 

 

그런 조지로서는 아내가 필요하고, 하필이면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는 것이 화근이다. 형인 필은 동생 조지가 버뱅크가로 아내를 데려 온 첫날, 그녀에게 이렇게 쏘아 붙인다. “내가 왜 너의 아주버님이야? 이 꽃뱀 같은 년아!” 결혼 전 필은 조지에게 여자가 너에게 시집을 오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아들이라는 피터(코디 스밋맥피)의 대학 등록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는 실제로 로즈를 사랑한다. 다행히 그녀의 아들에게도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그러니 집안의 분쟁이 만만치 않아질 것이라는 점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안 봐도 비디오,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 되고 만다.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게 가다가 의대에 진학한 아들 피터가 방학 때 버뱅크로 오면서 급물살을 탄다. 피터는 겉으로 보기만 해도 여성성이 더 강해 보인다. 서부의 ‘사나이’들에게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형이자 의붓 큰아버지인 필은 그런 피터를 지나치게 압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 조카를 서부의 남자로서 키워 내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세상 사는 여자의 눈을 피해갈 수가 없다. 피터의 엄마인 로즈는 필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피터를 필에게서 떨어지게 하려고 한다. 문제는 로즈가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로즈는 몬태나의 광활한 목장에 홀로 남겨진 고독감을 술 없이 견뎌 내지 못한다. 남편인 조지는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하지만 목장 경영에 여념이 없고 형인 필은 자신을 무시하고 압박하며 일은 일꾼들이 하기 때문에 할 일이 없고 무료할 뿐이다. 늘 돈이 많은 남자를 둔 여자들은 그런 이유로 술에 빠진다. 로즈가 딱 그렇다. 자신의 안위가 늘 걱정인 로즈를 여린 손으로 안아 주면서 아들 피터는 엄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피터의 이 흘리는 말 한마디가 영화의 뒷부분 모두를 좌지우지한다. 그는 정말 다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다소 지루하게 이어지던 영화는 극 중반부터 급격한 심리적 롤러코스터를 오르내린다. 로즈가 아주버니인 필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까, 조지는 아내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릴까. 아들 피터는 저러다 정말 법적이긴 해도 큰아빠인 필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근친상간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등등.

 

형 필의 캐릭터는 상당 부분 제인 캠피온의 전작이자 출세작인 ‘피아노’의 베인스(하비 카이틀)을 닮았다. 제인 캠피온이 ‘피아노’의 동성애 버전을 만들려 했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다. 때로는 세상의 모든 일이 단 한 사람에 의해 그 큰 물줄기가 바뀔 때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역할을 과연 누가 하게 될까? 무엇보다 왜 하게 될까. 그걸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일종의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이건 결코 로맨스 멜로물이 절대 아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시편 22편 20절이다. “제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저의 소중한 것을 개들의 힘으로부터 구하소서”이다. 이 시편도 잘 음미해 보시기를 바란다. 개들의 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과 영화 모두를 기꺼이 권해드린다. 읽고 보거나 보고 읽기를 강추한다. 세상은 넓고 보고 읽은 것은 차고 넘친다. 만고의 진리다. 극장에서는 이젠 볼 수가 없다. 넷플릭스 독점이다. 2021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