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을 끄고 노래하면 안 될까요 / 노희준 지음 / 강 / 292쪽 / 1만 4000원
1999년 문예지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노희준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그동안 장편소설들을 위주로 독자를 찾았던 작가이기에 소설집 형태는 오랜만이다. 책에 담긴 8편의 작품 모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는 놀라움을 준다.
표제작 ‘불을 끄고 노래하면 안 될까요’는 시각장애인 남자와 성폭행의 상처를 가진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말과 말 사이로 내는 소리와 가사 없는 노래로 소통하는 듯하다. 사람들의 말과 그 소리의 모양이 다른 것을 봐온 남자는, 말과 소리의 모양이 일치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여자는 남자의 상상을 채워주고 싶어 자신을 꾸미곤 했다. 남자는 “외로움마저 잃게” 될까봐 여자 앞에서 평범한 시각장애인 흉내를 낸다.
둘은 여자의 앨범 녹음을 위해 녹음실에 들어와서야 서로의 치장을 내려놓는다. 한동안 녹음에 고전하던 여자는 갑자기 불을 끄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빛이 사라진 뒤, 비로소 여자는 “노래 속으로 사라”진다. 그 생생한 음성은 남자의 흑백 세계를 “선명하게 번지는 색깔”로 바꿔나간다. 그렇게 남자는 말과 소리의 모양이 일치하는 흑백의 세계에서, 노래라는 색으로 뒤덮인 예술의 세계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문학평론가 최선영은 작품 해설을 통해 “우리가 진심이라고 부르는 그 세계는 말과 글보다는 소리를 닮았다. 파장이며 공명이고, 이해가 아닌 감각으로 스미는 소리. 노희준은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그 소리의 세계에 손을 뻗어왔다. 그 결과 우리가 이렇게 그 세계를 ‘볼 수 있게’ 됐으니, 그의 시도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앞으로도 그의 글이 기호가 아닌 소리로서 다가와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