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지음 /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32쪽 / 1만 4500원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등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최은영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책에는 짧은 소설 열세 편과 함께 원고지 100매 가량의 단편소설 한 편이 수록됐다. 단편소설에서는 관계에 대한 작가 특유의 진지한 탐색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앞서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인물 간의 우정과 애정을 살폈던 작가는 이번 짧은 소설집에서도 그 시선을 이어간다.
우리의 여리고 민감했던 시절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상처로 뾰족해진 마음의 모서리를 따뜻한 문장으로 쓰다듬는다. 어긋난 관계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애쓰지 않아도’ 중에서)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에서 작가는 우리가 서툴고 미숙했던,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시절을 그려낸다.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배신당하고, 선망은 곧 열등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열병 같았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담담해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성장담으로 다가온다.
관계에서 상처는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특히 무심하게 주고받는 말들에 마음을 베일 때가 있다.
작가는 날 선 말과 행동이 할퀸 마음을 위로하며, 상처받은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한다. 단편 ‘무급휴가’에서는 친구 사이인 두 여성이 등장해 어떻게 상처를 이겨내고 공감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를 봉합하고 아물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작가는 전한다.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불편하게 하지 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예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라는 이들을 본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본다. 더 노골적으로, 더 공적인 방식으로 약한 이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작가의 말’ 중에서)
책에는 아동과 동물에 대한 폭력 등을 바라보는 단호한 태도도 담겨있다. 고기를 먹지 못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 ‘호시절’, 병아리가 닭이 될 때까지 키우며 고기를 먹는 데 반감을 느끼게 된 이야기 ‘안녕, 꾸꾸’ 등 동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는, 생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손 편지’에서는 ‘학대받은 아이가 자라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는 식의 지하철 공익광고를 보고 상처받는 인물을 비춘다. 작가는 폭력을 보는 무심하고 게으른 시선이야말로 폭력적임을 말하며, 이에 둔감해지지 않으려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