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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그린 ‘영웅’ 아닌 ‘인간’ 안중근

 

◆ 하얼빈 /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308쪽 / 1만 6000원

 

김훈 작가는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로 쓰려는 구상을 품고 있었다. 안중근의 움직임이 뿜어내는 힘을 글에 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인간 안중근’을 깊이 이해해나갔다. 그래서 ‘하얼빈’은 김훈이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인생 과업으로 삼아왔던 특별한 작품이다.

 

책은 단순하게 요약되기 쉬운 실존 인물의 삶을 상상으로 탄탄하게 재구성한다. 이러한 서사는 작가의 대표작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칼의 노래’가 명장으로서 이룩한 업적에 가려졌던 이순신의 내면을 묘사했다면, ‘하얼빈’은 안중근에게 드리워진 ‘영웅’이란 단어를 걷어내고 그의 가장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시간을 현재로 소환한다.

 

‘하얼빈’은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갈등을 다룬다. 이토 히로부미로 상징되는 제국주의 물결과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청년기 순수한 열정이 부딪치고, 살인이라는 중죄에 한 인간의 대의와 윤리가 부딪친다. 또한 안중근이 천주교인으로서 지닌 신앙심과 속세의 인간으로서 지닌 증오심이 충돌한다.

 

안중근을 다룬 기존 도서들이 위인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 데 주력한 것과 달리, 작가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간다.

 

구한말, 쇠약해져가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던 청년들의 결기가 들끓고, 세상의 흐름에 맨몸으로 부딪친 민중들이 공허하게 스러지던 어두운 시대상.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안중근이 좇는 대의와 그가 느끼는 인간적인 두려움이 더욱 대비된다.

 

특히, 자신과 타인의 희생을 불사하면서도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영웅이란 틀에 갇혀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았던 낯선 면모이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기로 결단하는 순간은 우연과 운명이 뒤섞였다. 간도와 연해주 일대를 떠돌던 안중근의 하숙집으로 신문지 한 조각이 흘러든다. 그 위에는 통감 공작 이토가 대한제국의 위상을 격하하고 일제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연출한 순종 황제의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에 암시된 일제의 야욕을 감지한 안중근은 즉시 마음을 정하고 이토가 방문할 하얼빈을 향한 생애 마지막 여정에 오른다.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책 88~89쪽)

 

작가가 그리는 안중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온몸으로 길을 내며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안중근이 지녔던 젊음의 패기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의 생명과 함께 부서져간다. 거대한 세상에 홀로 맞선 안중근의 생애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과 탄식을 자아낸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