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1일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정국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이날 9명의 헌재 재판관 가운데 8대 1의 압도적인 비율로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뜻밖의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긴급 고위당정협의를 소집하는 등 수습대책 마련에 착수했고, 한나라당은 "위대한 결정이며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침묵을 지켰고 소속의원들에 대해서도 발언 자제를 당부했다. 헌재의 결정이 향후 정국 구도에 미칠 영향이 쉽게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메가톤급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결정으로 행정수도 이전에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등 여권은 정국 운영의 추동력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울러 당장에 열린우리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추진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기본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 입법 등 4대 개혁입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논리적으로만 보면 정부 여당은 개헌안 제출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의 계속 추진 여부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요하는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국민투표까지 가더라도 부결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뽑아들기 힘든 카드다.
특히 국민투표는 단순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정책 결정 수준을 넘어서서 정치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어쨌든 여권으로서는 충청권의 실망감을 달래고, 손상된 정국운영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에 대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마냥 좋아할 처지만은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해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지지율을 높일 수 있게 됐지만, 충청권 유권자의 거센 반발이라는 역풍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개혁입법 추진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서 이완됐던 여권 지지층이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탄핵정국'때와 유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재결집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명박 서울시장은 그동안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위헌 결정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등 한나라당내의 대권 경쟁구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예상된다.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조성된 정국상황은 4.13 총선 이전의 탄핵정국과도 비교된다.
현 정부 여당은 총선 결과 `탄핵 역풍'의 수혜자가 됐지만, 이번 행정수도 위헌결정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