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아크릴에 자연의 다양한 색채를 불어넣는 가구 디자이너 윤새롬의 개인전 ‘어느 날의 조각03’이 열렸다.
작가는 아크릴 표면을 염색해 서로 다른 색상 간의 자연스러운 혼합과 바림을 빚어내고, 빛의 굴절과 반사 현상을 통해 왜곡과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조각의 단면들은 철저한 계산으로 염색되지만, 결과물은 매번 작가의 예상을 벗어난다. 우연히 얻게 된 빛과 색채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구름의 상호 작용, 잔물결 치는 파도, 얼어붙은 풍경과 나무껍질의 표면 등 자연의 흐름과 질감에서 작가는 영감을 얻는다. 그 영감은 작가가 필리핀에 거주했던 어린 시절, 저녁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어느 날의’ 서정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의 작업은 그 시절 저녁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어느 날 여러 감정의 조각들,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 밑에서 올려다보았던 햇빛과 반짝이는 나뭇잎을 바라보았던 기억의 조각들이다. 나의 작업을 통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험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시각적 자극이 새로운 감정의 조각들로 남길 바란다.“ (작가 노트 중에서)
그의 기억 속 아름다운 자연의 색은 평범한 소재인 아크릴을 빛나는 크리스털(crystal)로 변신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크리스털 연작은 지평선과 맞닿은 바다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관람객에게 불러일으킨다. 유려한 곡선이 살아 있는 전시 공간을 따라 연출된 작품은 빛과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 각자에게 내면의 바다를 선사한다.
구름, 눈, 비, 햇빛 등 그날의 서사에 따라 벌어지는 우연들은 작가의 내면 속 풍경을 재현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은 결국 각각의 우연들로 저마다 고유한 빛을 지닌다.
이렇듯 작품은 전시 공간의 상황과 시각적으로 긴밀히 상호작용하도록 설계돼, 감상자는 위치에 따라 개인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자의 시공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새겨진 자연의 장면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어느 날’의 조각으로 다가온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경기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