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 공간을 너머의 소리와 이미지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큰 화포(캔버스)가 되는 전시가 열렸다.
경기 광주에 위치한 닻미술관이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시 ‘생의 기억’은 물리적인 틀 너머의 시간과 장소가 예술가의 기억과 교감함으로써 새롭게 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야생정원에 생겨난 새 공간 ‘프레임 FRAME’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이다.
닻미술관의 ‘프레임’은 안과 밖의 경계가 되는 ‘틀’이라는 제한 내에서 새로운 시지각적 가능성을 담아내며, 자연 속에서 예술의 원형을 찾아가는 곳이다.

전시는 생명의 흔적들을 채집해 비워진 틀 안으로 들여와 주의 깊게 살핀다. 광주 진새골 숲의 소리를 채집한 김준 작가의 설치 작업과 야생정원의 빛을 담은 조성연 작가의 사진 작업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재구성됐다.
소리를 담는 김준은 해뜨기 전과 해지기 전 숲의 형체가 온전히 드러날 때에 인적이 드문 곳이나 홀로 몰입하기 좋은 곳을 택했다. 작가는 이곳에서 낙엽, 새, 돌, 사람, 풀벌레, 물 등 자생하거나 길러졌던 모든 생물체들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지점의 흔적들을 찾아내 소리와 탁본으로 채집했다.
그 소리들을 마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걷는 것처럼, ‘숲속 낙엽 밟는 소리-돌 구르는 소리-아기 울음소리-하늘을 나는 비행기 소리-풀벌레 소리-물 흐르는 소리’ 등의 흐름이 있게 편집했다.

빛의 변화를 그려내는 조성연은 숲에서 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새벽 때를 기다려 필름 카메라에 담았다. 급변하는 날씨 속에서 숲 주변의 자연물에 주목하고, 시간대별로 다른 빛과 만나는 땅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작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에 다다르기도 하고, 푹신한 낙엽과 맨땅의 흙을 밟으며 그 감촉을 느꼈다.
김준의 ‘흐름의 흔적’과 조성연의 ‘숲의 숨’ 작품들은 소리 설치와 사진 이미지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전체가 조화로운 하나의 공연 같은 울림을 준다.
전시 관계자는 “두 작가에 의해 이곳 ‘프레임’ 밖에서 발견되고 창작으로 전환된 작품들, 즉 ‘생명’의 흔적들은 관람자를 주목하게 하고 다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5일까지.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