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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마음, 기리는 마음 담겨진 ‘지석’

경기도박물관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
시대별·문중별 지석 700여 점 전시
경기 사대부들의 삶과 가치관 살펴
내년 3월 26일까지, 무료 관람

 

“서거정은 온화하고 무던하며 간소하고 발랐으며 모든 글을 널리 보았고 겸하여 풍수(風水)와 성명(星命)의 학설에도 통했는데, 석씨(釋氏, 불교)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장을 함에 있어서는 옛사람의 격식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서거정의 졸기 중에서)

 

우리 옛 선조들은 먼저 떠난 이를 그리고, 기리는 방식으로 지석(誌石)을 제작했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을 비롯해 무덤의 위치, 방향 등을 적어서 무덤에 묻은 판판한 돌 또는 도자기 판을 말한다.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조선왕조 법전인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에는 지석 제작·매납 방법이 따로 기재돼 있을 정도로 당시 중요한 지배층 예절 문화의 일부였다.

 

공립박물관 중 가장 많은 지석을 소장한 경기도박물관이 지난 7일 개막한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은 경기도박물관의 소장품과 국내 대표 지석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선시대 지석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첫 전시로,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한 1300여 점의 지석들 중 엄선해 총 700여 점을 선보인다.

 

 

경기도에서 출토된 지석에는 조선시대 경기 사대부들의 삶과 가치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등이 글로 새겨져 있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돌과 흙에 남겨 후손에 전하고 싶었을까.

 

전시는 ▲예(禮)를 다하다 ▲삶을 기록하다 ▲사대부의 정신을 잇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지석의 의미와 유래, 지석에 담긴 삶과 후대에 남긴 이야기들을 살핀다.

 

 

◇ 조선 왕조 500년을 함께해온 지석

 

우리나라에서 지석이 유행한 것은 고려시대 성종 대 유교경전에 맞춰 상장례 법규를 정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고려시대 지석은 대개 돌로 만들어졌고, 중앙 고위관료나 귀족들만 사용했다.

 

1부에서는 유교를 기본 통치이념으로 삼은 새로운 왕조 조선이 유교의 상장례의 하나인 지석을 국가적 차원으로 권장한 배경과 도자 지석의 시작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지석은 유교 문화의 일부분으로 인식됐다. 조선전기 제작된 ‘국조오례의’ ‘흉례’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석의 내용 및 제작 형태를 명시하고 있다.

 

남송의 관혼상제 사례에 관한 예제(禮制)로서의 ‘주자가례’에 따라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사대부들의 지석은 주로 도자로 만들어졌다. 백자에 푸른색 청화 안료로 기록한 ‘청화백자’였다.

 

한편, 왕과 왕실 직계 자손들은 보존력이 좋은 오석·대리석으로 만든 석제 지석을 사용했다.

 

 

◇ 예와 효를 다하기 위한 지석

 

도자 지석의 변화와 흐름을 알 수 있게 각 시대별 주요 유물을 소개한다.

 

15세기는 고려의 전통인 불교적 색채가 있는 분청사기 지석과 새로운 유교의 규범에 따른 백자 지석이 공존한다.

 

보물 제1768호 ‘백자 흥녕부대부인 지석’(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은 세조의 장모인 인천 이씨(1383~1456)의 지석으로 조선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청화백자 지석이다. 백자 제작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 의미가 깊다.

 

전시를 기획한 김영미 학예사는 “백자 중 최고는 지석이라 할 수 있다. 완, 호 등 그 당대 최고 작품과 벽을 같이 한다”며 “효와 예를 다하기 위해 제일 좋은 도자로 구워냈다”고 설명했다.

 

지석은 글을 새겨 넣는 방법에 따라 음각, 상감, 청화, 철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뉜다. 각 시기별 상황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예와 효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전반, 전란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만들어진 ‘백자 이종린 지석’은 철화 안료로 지어졌다. 왕실의 종친이자 사옹원 제조였던 이종린을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진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문화재자료(제136호)로 지정됐다.

 

18세기 사회의 안정으로 청화백자 지석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지석 제작이 널리 퍼졌다. 사대부들은 지석의 보존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함을 만들어 그 안에 지석을 담았다. ‘백자 민백복 지석과 지석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남겨진 이들의 마음이 담긴 지석

 

조선 후기 경기 사대부의 면면을 살피기 위해 5개 가문을 중심으로 지석에 담긴 이야기를 펼친다.

 

▲효종~현종년간 두 임금을 보필하며 영의정 심지원의 ‘청송 심씨 인수부윤공파 종중’ ▲용인현 산의실에 대대로 세거했던 ‘청송 심씨 사평공파 종중’ ▲인조 반정 이후 세도의 중심이었던 ‘풍양 조씨 회양공파 종중’ ▲18세기 탕평정치를 뒷받침했던 유직기의 ‘기계 유씨 종중’ ▲서울 경기지역 노론 낙론 학맥의 학자를 배출한 홍직필의 ‘남양 홍씨 종중’ 등이다.

 

이들은 모두 서울·경기지역에 세거하며 조선의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남겼다. 지석을 통해 선조들이 남긴 삶의 가치를 전했고 행적을 추모했다. 초상화와 저술 등을 통해서도 사대부 가문의 품격을 높였다.

 

 

효와 예를 중시한 지석의 이면에는 먼저 간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내를 보낸 남편의 애절함,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를 마음 등이 담겨 가족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드러낸다.

 

사대부 지석을 통해 삶의 존엄성과 가치를 돌아보는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은 내년 3월 26일까지 진행되며 무료관람이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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