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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여성들이여. 트라우마를 벗어나 전사로 부활하라

95. 부활 - 앤드류 시맨스

 

미국 메이저 영화사인 유니버설 배급작품임에도 극장 개봉에 실패하고 IPTV로 직행한 ‘부활’은 레베카 홀과 팀 로스 등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이다.

 

감독은 생소하지만 두 배우의 인지도만으로도 충분히 손이 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마도 이 영화의 마케팅을 맡았던 사람들은 요령 부득, 극장 개봉을 포기하게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갖게 된다.

 

영화 내용이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매기(레베카 홀)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데이빗 모스란 남자(팀 로스)는 어떤 인간일까. 악마일까. 그냥 그저 그런 악한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범죄 스릴러 장르를 많이 본 사람들은 으레 생각하는 결말이 있다. 남자의 존재는 알고 보면 허구라든지, 모든 게 다 여자가 보는 허상이나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든지, 이 모든 사달은 정신병적인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맨 마지막 장면은 병동 창살 안에 갇힌 주인공의 멍한 표정이 나올 것이라든지 등등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쪽이다. 그래서 더욱더 ‘정말?’하는 심정이 된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이 영화의 제목을 퍼뜩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부활?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고 과연 누가 부활한다는 것일까.

 

 

매기는 생물 공학자이다. 관련 회사의 중역이다. 그녀는 여자 인턴 그윈(안젤라 웡 카보네)에게 인생 상담을 해 줄 만큼 회사의 이사로서 다방면의 업무에 활동적으로 임하며 살아간다.

 

18살 딸이 하나 있는데 미뤄 짐작하건대 현재 마흔 한 살이거나 마흔 살이다. 매일같이 비교적 격렬하게 조깅을 하고 엄격하게 일상을 관리한다. 나름 성욕도 강한 편이어서 회사 내 유부남 애인과 틈틈이 섹스를 즐기는데 아마도 그건, 그것을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라고 생각해서인 듯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일상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한 남자가 자신 앞에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19년 전, 18살 때 만났다가 19살에 남자 아이를 낳고 도망쳐 나온 관계로 설명된다. 이 설명은 극도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매기가 인턴 그윈에게 독백처럼 고백하는 장면에서 이뤄진다. 레베카 홀은 이 장면을 5분 넘게 원 숏으로 홀로 대사를 이어 나간다. 레베카 홀이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문제는 매기가 영국에서 (나이 차이가 스무 살 정도 나는) 데이빗을 만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학대를 당했다는 것. 여자가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그녀가 오로지 남자인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충성하게 하기 위해 중절을 시키려 한 것 등 과거의 일이 심각해도 너무나 심각했다는 것이다.

 

더 끔찍한 일은 결국 남자 아이가 태어났고, 벤이라고 이름까지 붙였음에도 어느 날 매기가 마트에 갔다 온 사이 데이빗이 그 아이를 손가락 두 개만 남겨 놓고 ‘먹어 치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1년 넘게 데이빗에게 완벽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살아가던 매기는 이 사건으로 정신을 차리고 돈과 트럭을 훔쳐 달아나 지금의 미국 뉴욕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 그녀의 비극적인 사연이다. 근데 정말 이 일이 사실일까.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가스라이팅과 학대를 다루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했다. 이 영화 ‘부활’ 역시 남자가 신생아를 ‘먹었다’는 쇼킹한 얘기를 빼면 이런 류의 영화가 갖는 트루기(이야기의 전개 방법, 방식)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편이다.

 

멀게는 줄리아 로버츠의 1991년 출연작인 ‘적과의 동침’과 유사하다. 조금 확대 해석하면 ‘적과의 동침’에서 탈출에 성공한 여자 앞에 남자가 다시 나타나 벌이는 새로운 학대 극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부활’의 매기 역시 새롭게 전개되는 남자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시 나타난 남자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여자에게 말한다. “벤을 데려 왔어. 이 안에 벤은 살아 있어.” 여자는 기겁을 하며 자신과 자신의 딸 애비(그레이스 카우프만)에게서 떨어지라고 소리치지만 곧 남자가 시키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남자는 회사까지 차를 놓고 걸어서, 그것도 맨발로 출근하라고 한다. 매기는 절대 안하겠다면서 그렇게 한다. 데이빗은 또 여자에게 공원에서 새벽 2시부터 동이 틀 때까지 반성과 명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라고 한다. 여자는 내가 네 얘기대로 하면 미친 인간이라고 소리치면서도 공원에 나가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자신이 이러는 것은, 딸 애비가 남자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자위한다.

 

영화는 점점 더 패러노이드(paranoid)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매기의 편집증이 거의 광적인 수준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남자의 존재가 여자를 미치게 하는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스치기 시작한다. 데이빗의 존재가 실재하는 것인가. 데이빗은 과거의 존재일 뿐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은 매기가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꾸미고 저지르는 자작극 같은 사건이 아닌가. 영화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 ‘부활’은 부활이란 말이 갖는 종교적 상징성의 제의(祭儀)를 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 준다. 그건 이성적으로는 허무맹랑할 수 있지만 여성이 가학적 남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주인공 매기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역사의 배를 가른다. 영화가 후반부에 칼부림과 난도질, 피 칠갑이 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매기는 인턴 그윈에게 나쁜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녀 자신에게 올바른 말을 하도록, 비웃거나 막대하지 못하도록 남자에게 당당히 요구하라고 한다. “그윈. 당신은 전사니까요”라고 말한다. 매기 스스로 지난 19년간 당당한 여전사가 되는 것을 꿈꾸며 살아 왔다. 그러나 정신적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데이빗의 존재가 실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매기의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았으며,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영화 ‘부활’은 그 트라우마, 정신적 상처를 없애기 위해 현대사회의 여성들에게 어떠한 부활 의식이 필요한 것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올바른 여성성의 부활은 이 영화가 요구하는 것처럼 매우 전투적이고 공격적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론에 대해서 사람들은 동의와 부정으로 엇갈릴 수 있겠다. 바로 그 ‘엇갈림’이야말로 마케터들로 하여금 이 영화의 극장 개봉을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중들은 영화에 관한 한 심플하고 명쾌한, 그럼으로써 예측 가능한 결말을 원하는 경향이 높다. 마치 정치적 논란에 대해 단순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부활’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소 외면을 받더라도 언젠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꼭 다시 부활할 영화이다. 장담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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