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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83. 현등사, 석등의 불빛은 영원하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산에 현등사(懸燈寺)가 있다.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摩羅詞彌)를 위해 지었다고 하며, 신라 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했다.
고려 희종(熙宗)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재건하였다. 보조국사가 이 절을 발견했을 때 잡초만 우거진 절터에 석등의 불빛만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어서 ‘현등(懸燈)’이라 이름 붙였다.

 

 
그 뒤 1411년(태종 11)에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이 부근에서 길을 잃었는데,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기에 따라갔더니 사슴은 사라지고 옛날 건물터가 있기에 크게 중건하였다. 그 때 평원(平原)대군과 제안(齊安)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을 함께 지었다. 세종이 특별하게 예우를 한 신미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불교를 억제하던 조선시대에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어서 1823년(순조 23)에 다시 중수하였다.

 

 

1826년에는 대군위실(大君位室)을 새로 지었다. 대군위실은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위패를 모셨다. 두 대군의 묘가 성남에 있었고 수진궁과 법륜사, 망경암 등이 관련돼 있었다.

1891년 상궁 하씨가 중수하였고, 몇 차례 중수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당우가 소실된 것을 성암(省庵)이 다시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산부원군 김수온(金守溫)의 형이기도 한 신미(信眉)대사에 대한 세종대왕의 예우는 각별한 것이었다. 세종 뿐 아니라 안평대군과 수양대군(후일 세조), 문종 임금이 그를 기용했다. 언어학에 능통하여 한글 창제의 실질적인 주역이라는 설이 있고, 실질적으로 한글 보급에 큰 기여를 했다.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등 수많은 한글 작품들이 신미대사의 손을 거친 것이다.
 


신미대사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진관사의 승려가 소장(訴狀)을 제출하기를, "내가 전라도 각 고을에서 내야 할 전세(田稅)의 종이(紙)와 초둔(草芚)을 대납하고, 댓가로 쌀 1150석을 조운(漕運)하여 서울에 온 지가 며칠이 되었는데도 선인(船人)이 나타나지 않으니, 반드시 이것은 도용(盜用)할 계책입니다." 하였다.

 

의금부에 내려서 조사를 했더니, 현등사의 중 설정(雪正)이 관련돼 있어서 체포해서 가두었는데, 문종 임금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승정원에 지시하기를, "어제 의금부에서 어찌 죄 없는 중을 가두었느냐?" 하니, 의금부 제조(提調) 이맹진·윤형·이선제가 마침 일을 보고하러 왔는데, 이맹진 등이 아뢰기를, "선주(船主) 김상(金尙)을 조사한 진술서에 ‘현등사(懸燈寺)의 중 설정이 쌀 120여 석을 운반해 갔다.’고 하므로 그 이유를 묻고자 한 것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신미는 세종께서 존중하던 중(僧)이고, 현등사는 신미가 거주한 절이므로, 그 절의 중도 또한 계율을 지니고 있으니 반드시 의롭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현등사에서 쌀을 운반해 간 것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알고 있을 것인데, 어째서 그 절의 중을 가두었는가?"하고는 즉시 석방하도록 하였으며, 나중에라도 물을 일이 있으면 불러 와서 묻도록 하고 침범하여 소요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였다.


현등사에는 조선 중기의 뛰어난 도학자인 서경덕(徐敬德)의 부도가 있고, 오성대감 이항복을 비롯해 김육, 최명길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극락전, 보광전 및 요사채를 비롯해 3층 석탑·지진탑(地鎭塔)·부도(浮屠) 등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금병풍(金屛風)이 있었다고 하는데, 6·25전쟁 중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이항복의 시(懸燈寺) 한 수를 보자.

 

운악산은 골이 깊기도 한데 / 雲岳山深洞
현등사를 처음으로 창건하였네 / 懸燈寺始營
노는 사람은 성을 말하지 않는데 / 遊人不道姓
괴상한 새는 절로 이름을 부르누나 / 怪鳥自呼名
뿜어내는 샘물은 하늘의 띠가 장대하고 / 沸白天紳壯
모여든 산봉우리는 지축이 기울도다 / 攢靑地軸傾
다정하게 호계에서 작별을 하니 / 殷勤虎溪別
석양빛에 저문 산이 밝구려 / 西日晩山明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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