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금리 동결을 점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초반으로 내려선 데다 경상수지가 1~2월 연속 적자를 내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금통위는 지난 2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약 1년 반 동안 이어졌던 기준금리 인상 행보를 잠시 멈췄다. 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이 그간 통화정책을 운영하며 '물가 흐름'을 강조해 온 만큼, 점차 둔화고 있는 물가 상승세가 가장 강력한 '동결' 명분이 될 전망이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2% 오르며 지난해 3월(4.1%)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3.9%를 기록하며 3%대에 재진입했다.
현실로 다가온 경기 둔화 우려 역시 동결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제조업 기업 심리 위축 등 경기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인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가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정했다는 점도 동결 전망에 힘을 싣는다. 미 연준이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한은 역시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지켜보며 통화정책을 여유롭게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다만 금리 인상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둔화하긴 했으나 근원물가(변동이 심한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 상승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4.8%로, 근원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것은 2021년 1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유가 추이와 국내외 경기 흐름, 공공요금 인상 폭과 시기 등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졌고,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의 추가 인상 가능성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한·미 금리차를 좁혀나가기 위해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75~5%로 한국보다 1.5%p(상단 기준)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미국이 5월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경우 양국의 금리 격차는 1.75%p까지 확대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현재 수준(3.5%)에서 유지하면서 물가·환율·경기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가 100명의 채권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83%가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인상을 예상한 이들은 응답자의 17%에 그쳤다.
금투협 측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높아지며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물가 둔화세가 가시화해 동결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