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규 계좌 개설에 있어 별도의 제약이 없는 자유적립식 적금이 중고거래 등 사기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매번 새 계좌를 발급하거나 계좌번호 변경 서비스를 활용해 사기거래이력 조회망을 빠져나가는 신종 수법으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5일 제보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0일 무렵부터 온라인에서 중고거래, 게임머니 사기 등을 저지르고 있다. A씨에 의해 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며칠 만에 250명 규모로 늘어났다. 이들은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각자의 피해사례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기이력조회 사이트 '더치트'를 통해 A씨의 계좌번호가 사기로 신고된 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거래를 진행했지만, 이는 무용지물이었다. A씨가 계좌 개설에 제한이 없는 자유적립식 적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A씨는 사기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새 적금계좌를 만드는 수법으로 사기이력 조회망을 빠져나갔다.
자유적립식 적금계좌는 신규 개설에 아무 제한이 없어 사실상 한 사람이 무제한으로 계좌를 만들 수 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예금주가 원하면 아무 때나 입금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의 송금한 돈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일반 입출금 통장은 대포통장이나 금융사기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자 1개의 통장을 개설한 후 20영업일이 지나야지만 새로운 입출금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A씨는 계좌번호 변경 서비스를 통해 일반 입출금통장도 사기에 이용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해당 서비스는 휴대폰번호 등 예금주가 원하는 숫자로 계좌번호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 계좌번호를 외우기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계좌번호를 바꿀 수 있어 사기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A씨는 사기이력조회를 피하기 위해 자신 명의의 입출금 통장 1개의 계좌번호를 여러 차례 바꾸는 수법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유적립식 적금 계좌는 아직까지 (개설에) 제한이 없어 당국과 은행이 함께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며 "개인이 필요에 의해 적금을 여러 계좌 개설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계좌 개설 서비스를 악용하는 범죄자와 투자 등의 목적으로 적금을 여러 개씩 가입하는 소비자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요원하다"며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자유적금 계좌 중 실제로 보이스피싱에 이용돼 지급정지된 건수는 미미했다"며 "금감원은 보이스피싱에 한정해서 업무를 하다 보니 지급정지된 계좌 수가 굉장히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도 관련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현재 작년에 비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파악 중이며, 이후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관련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부연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