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를 심사하는 것이고, 위법하거나 위헌적인 상황이 없다면 상임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소위 법사위의 월권에 대한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왔다. 농협법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연임제 도입을 두고 일부 의원들의 선 넘은 발언에 대해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이 소신 발언을 내놓은 것.
이번 농협법 개정안에는 현행 4년 단임인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1회 연임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직 회장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면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성희 회장도 연임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이 현 정부와 가까운 이 회장의 연임을 위한 개정안이라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해당 법안을 두고 개인을 위해 법을 만들거나 고치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앞서 한 의원이 지적했던 것과 같이 법사위는 '법안의 체계·형식·자구'를 심사해야 하는 곳으로, 법안의 내용에 있어서는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현직 중앙회장의 연임제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농해수위에서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는 이유로 현직 회장에게도 적용하기로 결론지었다. 농해수위 검토보고서나 법안소위 심사 과정을 보면 연임제의 필요성, 연임제 도입에 따른 우려, 단임제 도입 원인의 해소 여부, 적용시점 등 세부적인 사항까지 여야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법사위는 연임제를 문제 삼아 법안 처리를 막으면서 농해수위의 심사 과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는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근거가 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선을 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후보로 출마하려는 전북지역의 특정 조합장 당선을 위해 연고가 전북인 의원들 중심으로 현 회장의 출마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전북의 특정 조합장의 경우, 국회 법사위 위원실을 직접 방문해 현 회장의 출마를 막아달라며 호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심지어 전북이 연고인 일부 법사위 의원들이 전북 지역 특정 출마예상자를 위해 ▲법안 전체를 계속 계류시키든지 ▲회장 연임제 부분만 빼고 의결하거나 ▲지금은 즉시로 돼 있는 연임제 시행 시기를 내년 중앙회장 선거 이후로 바꿔 의결해, 현 회장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까지 다음 법사위 전체회의에 제안할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지역 조합장은 “법사위에서는 농해수위에서 의결한 대로 법안을 처리해 주고, 우리 조합장들이 선거로 회장을 뽑을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며 "중앙회장 선거가 다가올수록 법사위가 농협중앙회장 선거판이 돼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앙회장의 연임을 두고 나오는 여러 이야기로 인해 농협법 개정안의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 개정안은 ▲중앙회 무이자자금 운용 투명화 ▲비상임조합장 연임 2회 제한 등의 내용을 담아 농협의 개혁과 건전한 운영에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농협법 개정안과 관련된 논의는 오는 13일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 다시 진행될 전망이다. 법사위가 가진 권한 범위 안에서 법률을 심사하고, 농해수위의 취지대로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