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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부서진 달팽이 껍질 같은 집에서 홀로 즐긴다”…인천 계양구 ‘이규보 자오당터 표지석’

이규보, 1219년 중앙 관직에서 계양부사로 좌천
허름한 관사 ‘자오당’에 머물러…현재 고양골체육관 궁도장

 

18.  “부서진 달팽이 껍질 같은 집에서 홀로 즐긴다”…인천 계양구 ‘이규보 자오당터 표지석’

 

큰 배가 파도 위에 한 점으로 떠 있었는데,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것과 같았고, 작은 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머리를 조금 드러낸 것과 같았고, 돛단배가 가는 것은, 사람이 높은 모자를 쓰고 가는 것과 같았다. 산과 여러 섬은 가물가물 서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뚝하거나 민둥하였고, 발돋움하거나 엎드렸으며, 등뼈처럼 나오거나 상투처럼 솟기도 하였고, 가운데가 구멍처럼 뚫리거나 우산처럼 머리가 둥글었다.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계양산 주변은 육지가 아니었다. 물가였던 계양산 일대는 조선 중·후기 개간되면서 육지가 됐다.

 

800여 년 전 계양의 모습이 이규보의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에 담겨 있다. 

 

계양망해지는 고려 중기 대표 문인 이규보가 계양산 정상 부근의 만일사(萬日寺)에서 본 계양의 모습을 쓴 글이다. 

 

이규보는 원래 중앙관직인 좌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방관의 과오를 눈감아줬다는 이유로 1219년 5월 계양도호부부사로 좌천돼 13개월 간 인천에 머물렀다. 


이규보는 부임 직후인 1219년 6월 ‘자오당기(自娛堂記)’를 지었는데, 자오당은 이규보가 머물렀던 관사 이름이다.

 

 

이 작품 속에서 관사가 얼마나 허름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깊은 산 옆, 풀과 갈대가 우거진 사이에 한쪽이 무너져 마치 달팽이의 부서진 껍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을 태수의 거처로 삼았다. 그 구조를 보건대, 내버려진 대들보에 시렁 같은 용마루가 집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을 뿐이다. 


이곳은 고개를 들거나 구부려 무릎을 뉘이기도 어려울 만큼 좁았다. 더울 때는 마치 깊은 시루에 들어가 찌는 듯한 기운이 가득 찼다.

 

부인과 아이들은 하루도 묵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규보는 홀로 기뻐하며 방을 쓸었다. 관사의 이름도 스스로 즐거워하는 집이라는 의미인 ‘자오당’이라고 지었다. 

 

자오당은 인천 계양구 북인천중학교 위쪽 고양골체육관 궁도장에 있었다.

 

시는 1955년 ‘자오당터’가 새겨진 표지석을 건립했다. 양궁장 가운데 있는 표지석만이 이곳이 관사 자리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샛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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