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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이제는 이 전쟁을 그만 끝내야 해.

131. 크리에이터- 가렛 에드워즈

 

영화의 화두는 시대에 따라 옮겨 다닌다. 한때는 정치적 난민 문제가 대세였다. 시리아 독재와 내전이 유발한 난민이 어떤 국제 분쟁으로 이어졌고, 자국 내 이민자 문제의 정치 쟁점화로 연결됐으며, 그로 인해 트럼프 식의 극우 정치집단들을 양산해 내는지를 다뤘다.

 

그러다가 또 언제부터인가 많은 관심이 환경 문제로 옮겨 갔다. 모두들 엘 고어 식 ‘불편한 진실’에 대해 얘기했다. 요즘의 메인 테마는 AI이다. AI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다룬다.

 

AI라는 초유의 인공지능 기술이 신 제국주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AI 기술이 앞으로 그야말로 인간 해방에 일조하는 장미 빛 미래가 될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걱정하고, 공감한다. 영국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뛰어난 지능’이 돋보이는 영화 ‘크리에이터, The Creator’는 AI 얘기를 다룬 것 중 가장 혁신적이면서, 또 가장 정치적인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몇 가지 지점에서 깜짝 놀라게 되는데 1) 배경은 2066년이지만 실제 얘기는 1960년대의 베트남전이라는 것 2) 여기에 9.11 테러의 역사를 얹히되 부시-럼스펠드-딕 체니가 공모한 공작 정치의 이슈였던, 대량살상무기 색출 문제를 소환시켰다는 것이다.

 

또 3) 이걸 리들리 스콧의 1980년작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로 만들고 4) 또 여기에다 1979년작인 프랜시스 F.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의 전쟁 액션 영화 같은 분위기를 덧칠했다는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역사가 영화가 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 의식과 관념의 싱크로율이 대단한 작품이다. 1975년생인 감독 가렛 에드워즈가 뛰어난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영화는 뉴스 릴이 아닌 (연출된) 뉴스 릴로 시작된다. 미국 합참의장인 듯이 보이는 고위급 군 인사가 미 의회 연단에 올라 말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10년 전 LA 핵폭탄이 터졌다, 인간을 보호해야 할 AI들이 저지른 짓이다, 우리는 끝까지 AI들을 색출해서 제거할 것이다.

 

또 우리는 얼마 전 AI들의 본거지를 찾아냈으며 곧 노마드(미국이 개발한 일종의 대형 전술핵미사일 시스템 및 무기)를 이용해 그곳을 섬멸할 것이다, 그곳은 뉴 아시안 지역이다, 강조하건대 뉴 아시안 지역에서의 전쟁은 AI를 없애는 것이지 그곳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 드린다, 등등이다.

 

 

뉴 아시안 지역은 AI와 시밀러(the similar, 곧 半인半로봇들로 피부 재생과 이식을 통해 얼굴과 외모는 사람 모습이다.)들 그리고 진짜 인간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지역으로 설정된다. 영화는 종종 이곳을 부감 쇼트로 보여 주는데 마치 북베트남에 있는 하롱 베이처럼 보인다.

 

베트남이 요즘 할리우드 시각에서 확실한 이머징 국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영화 속 도심은 중국 베이징과 도쿄 올드 타운을 뒤섞은 이미지를 연상시킴으로써 영화가 표방하는 범아시아적 특징을 나타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넘어 결국 미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경쟁 대립 관계를 상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희망은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나올 것이라는 감독의 친 아시아적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흑인인데 이름이 여호수아(에수)의 다른 말인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이다. 조슈아가 사랑하는 마야(젬마 찬)는 인도계 아시안처럼 느껴진다.

 

마야는 하웰 대령(앨리슨 제니)이 지휘하는 미 해병 특수부대원들이 그렇게나 색출해서 없애려는 AI의 정신적 지도자 니르마타이다. 니르마타는 힌두어에서 유래된 듯이 보인다.

 

둘의 사이에서 태어날 뻔하고 결국 마야가 자신의 아이를 대체할 AI 인간으로 재탄생시킨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의 이름이 지닌 의미도 히브리어로 신을 뜻한다. AI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저항군의 지도자 하룬(와타나베 켄)은 종종 일본 말을 쓴다. 이 모든 것은 영화 ‘크리에이터’가 脫서구화, 비욘드(beyond) 미국화를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LA에 터뜨려 순식간에 100만 명을 살상하고 인류를 위협한 AI의 핵폭탄 공격에 대한 얘기나, AI들의 절대적 비밀병기이자 초능력자인 알피의 존재를 찾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벌이는 군사 행동은 과거 부시 행정부가 대량 살상(화학) 무기를 찾아내겠다며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시의 정치군사적 목적은 미국 특히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식시켜 경제적 이권을 챙기려는 것이었다. 그때도 내세운 슬로건은 군사공격의 대상이 독재자 후세인이지 이라크 민중은 아니라는 식이었다.

 

문제는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실상을 담은 영화가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이 2010년에 만든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그린 존’이다. ‘크리에이터’에서 AI의  저항군 지도자 하룬은 주인공 조슈아에게 하소연하듯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요. 서로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오” 조슈아가 사랑하는 여인 마야는 언제가 노마드의 공격으로 눈앞에서 부모를 잃은 AI 아이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마야는 울먹이며 조슈아에게 말한다.

 

“이제 이 전쟁을 끝내야 해” 조슈아는 니르마타를 잡기 위해 마야에 접근한 언더 커버다. 프락치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야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오로지 마야밖에 모른다. 니르마타는 잡더라도 마야는 데려오겠다고 생각한다. 순진하다.

 

잔혹한 하웰 대령의 군사작전에 참여하고 길잡이로 나선 것도 죽었다고 생각한 마야가 AI 지역 뉴아시아 본거지에 살아 있다는 첩보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 여자밖에 모르던 조슈아는 아이 알피를 만나고 하룬 등과 같이 저항군의 일원이 되면서(하룬은 조슈아에게 말한다. “당신도 이제 우리와 같아진 거야!”)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현실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현실 개혁은 그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현실은 개혁을 위해 존재하며 개혁은 현실 없이는 불가능하다. 변증법이다.

 

 

미군의 첨단 헬기가 뉴아시아 존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모습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나오는 헬기 장면, 바그너의 발퀴레 제3막 ‘발퀴레의 기행’이 깔리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지상에서 미군과 저항군이 싸우는 모습은 ‘스타 워즈’를 닮아 있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전작들에게서 가져온 엄청난 양의 레퍼런스들은 이 영화를 보는 묘미 중의 하나이다. 미국 영화로 미국 영화를 뛰어넘으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새로운 미국 영화는 어쩌면 철저하게 미국적인 것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는 얘기이다.

 

 

미래 세계의 모습을, 베트남전 시대로 회귀시킨 역사의식도 남다르게 보인다. 월남전은 미국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이다. 미국은 공산 반군을 없앤다며 베트남 양민들을 학살했다.

 

영화 속에서 미 해병대들이 AI와, AI와 함께 사는 사람들(마치 1960년대 미국 내 유색인종의 인권을 돕는 백인들처럼)을 공격하는 장면은 거의 명백히 미라이 양민 학살 사건(1968년 캘리 소대가 베트남 미라이 마을 주민 500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올리버 스톤의 1986년 영화 ‘플래툰’의 소재가 됐다.)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크리에이터’는 AI 시대에 이르러서도 베트남전의 악몽과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역사적 의지를 보여 준다. 한편으로는 전쟁의 상처란, 족히 100년에 이를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크리에이터’는 SF 영화가 역사영화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 작품이다. 미래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된다. ‘크리에이터’는 미래이자 현재이며 과거를 다룬 작품이다. 그 점이 좋은 작품이다. 그것도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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