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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검사들의 무결점주의가 빚어 낸 참사를 말하다

134. 소년들- 정지영

 

영화감독에게는 벗어나지 못하는 DNA 같은 것이 있는데 그건 그의 작품에 늘 낙관처럼 찍히는 것이어서 영화를 단 5분만 봐도 이건 누구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재능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일 수도 있다.

 

새 영화 ‘소년들’은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딱 정지영 표 영화이다. 그는 줄곧 한국 사회 내의 비리와 불의, 이루어 내야 할 정의로운 무엇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 어떤 때의 대중은 그걸 잘 받아들였고 어떤 때의 관객들은 다소 지루해 했다. 이번 ‘소년들’은 정지영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다.

 

 

‘소년들’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1999년 전북 삼례의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3인조 강도 사건의 이야기이다. 강도들이 물품을 터는 과정에서 슈퍼 안 할머니가 질식사하게 된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입과 코를 테이프로 막은 것이 원인이 됐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범행 직후 신속하게 체포된 소년 세 명이 사실은 진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점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진범이 아닌데도, 진범이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데도, 사건이 완전히 날조됐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는데도, 소년들은 오랫동안 감방에서 나오지 못했으며(최대 6년을 살았다) 사건의 재심은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사실 그 점까지도 핵심이 아니다.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진범의 자기 진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16년이 지나서야 재심 판결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더욱더 핵심적인 얘기는 재심 결과 이 사건을 오랜 시간 거짓과 은폐로 오도했건 검찰의 그 누구, 경찰의 그 누구도 징계 받거나 소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 ‘소년들’은 그전 과정을 수색하고 탐문하되 1999년과 2016년의 시공간을 오가며 이야기를 축약해 낸다. 그 이야기의 리듬이 매끄럽다. 자칫 다큐처럼 흐를 수 있는 구성을 극 영화의 이야기 구조로 적절하게 치환시킨다.

 

‘소년들’을 만들면서 정지영 감독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만큼 이 사건이 철저하게 사람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중들은 늘 매우 차갑고 냉정한 편이어서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도 일상을 금세 다른 것으로 덮어 버리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삼례 슈퍼 3인조 강도 사건 ’따위’를 잊은 지 오래다. 이런 사건이 주는 사회적 각성에 대해 무시하고 살아간 지 오래이다. 정지영 감독은 그런 ‘무심한’ 사람들에게 영화적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기조, 톤앤 매너는 ‘재미’이다. 영화는 마치 한편의 수사반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스펜스의 흐름이 만만치 않다. 영화는 실제 사건의 결말을 아는 관객들에게조차 영화 속 소년들이 정당한 판결을 받기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마음을 쥐락펴락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주인공 설경구의 역할이 컸다. 그가 맡은 황준철이라는 경찰캐릭터의 구축이 올바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설경구에겐 오랜 시간 강성에다 다소 인공적인 경찰 캐릭터가 고착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겐 ‘투 캅스’의 이미지가 컸다.

 

이번 영화에서 황준철 경위, 설경구는 그다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다지 눈을 부라리지도 않는다. 액션도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는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사건을 두고 16년이 흐르는 동안 황준철이라는 인물 역시 끊임없이 회의했을 것이고(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줄곧 좌절했을 것이다.(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상은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심리적 노화를 설경구는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 나간다. 설경구의 연기는 뒤로 갈수록 인간적이 돼 간다. 그 비루함을 잘 담아낸다. 황준철은 한때 열혈남아였지만 한직으로 몰려다니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침몰시켰다.

 

그는 은퇴를 앞둔 시기에 삼례로 돌아와 파출소장을 하며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재심 수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다 끝난 사건을 다시 다 들춰 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요?!” 그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그 자신도, 그걸 듣는 변호사와 사건 최초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윤미숙(진경)도, 범인으로 몰렸던 아이(청년) 세 명도, 무엇보다 이 얘기 전체를 지켜보고 있던 극장 안 관객들까지 추호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영화 ‘소년들’은 억울한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꺾였던 좌절감을 딛고 어떤 계기로 올바른 분노의 불씨를 다시 살려 내며 또 어떻게 그걸 이어 가느냐에 더욱 집중한다.

 

‘소년들’이 가장 애썼던 부분은 황준철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무수한 실수를 거듭했던 한 인간에 불과하며 사회의 정의는 결코 단 한 명의 영웅담으로 채워질 수 없음을 강조하려 한다.

 

지치고 늙은 표정의 설경구 연기가 좋아 보이는 것, 그런 톤의 연출이 적절했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황준철 캐릭터에 그런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부과함으로써 영화는 의도적으로 우회해 가던 척, 오히려 사회적 리얼리티를 부각시키고 배가시킨다. 그 사고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소년들’이 주는 매우 중요한 깨달음은 지금의 이 사회가 검찰 무결점 주의에 의해 오염되고 타락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무가내의 권력에 지배당할 것이라는 그 예언적 예언에 대한 느낌적 느낌 같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는 2020년 코로나 시기에 제작됐으며 오랜 기다림 끝에 만 2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공개되는 사이에 세상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 바뀐 세상의 일단을 진단하는 데 있어 ‘소년들’은 검찰과 경찰, 흔히 공권이라 불리는 국가권력이 얼마나 더 무소불위의 것으로 변질됐으며 그것이 얼마나 더 악랄해질 수 있는지를 묵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작금의 영화계가 내놓을 수 있는 영화들 중, 최고로 反 정부적이면서도 정부 비판적인 작품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정부와 정치의 본질을 작렬하듯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검찰과 사법당국의 무결점 주의, 무오류 주의, 아무리 판결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광기의 관성,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그래서 일절 사과를 모르는 집단적 환각에 대해 얘기한다.

 

그건 1999년에도 그랬고 2016년에도 그랬으며 2023년 지금이나 아니면 한동안 꽤 계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강조한다. ‘소년들’이 역설적으로 다소 오싹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 같은 묵시록적인 예언 때문이다.

 

 

나이 탓인지, 오랜 습성 때문인지 정지영이 연출은 중간중간 다소 올드 패셔너블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극 후반의 법정 신은 다소 작화 되고 윤색됐을 것이다. 상업영화의 재미를 가져가야 하고, 피날레의 장면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만 빌런에 해당하는 인물들, 곧 검사(조진웅)와 사건을 왜곡한 경찰 최우성(유준상)의 캐릭터가 좀 더 입체적이었으면 좋았을 법 했다. 주인공 황준철의 부하 형사인 정규(하성태)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선하게 그린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악당 전문 연기자인 하성태 이미지를 180도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일종의 캐릭터 영화이다. 캐릭터 영화는 메인 캐릭터와 서브 캐릭터를 어떻게 배치하고 각각의 깊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만드느냐에 승패가 달린다. 그 고민이 줄곧 보이는 영화이다.

 

‘소년들’은 정지영이라는 노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 상업영화의 방식으로도 사회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고심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 축적된 진심과 진정성이 느껴진다. 대중들의 판결만이 남았다. 재심으로 가는 사건 같은 영화가 되지 않기를, 그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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