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금융지주를 비롯한 은행권의 주가가 계엄령 사태 이후 이틀째 무너지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정국 불안이 커지면서 외국인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데다, 이번 사태로 인해 '밸류업(Value-up·기업가치 확대)'이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대되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된 영향이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5일 오후 2시 49분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KB금융은 전일 대비 9.85% 떨어진 8만 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신한지주는 5.22% 하락한 4만 9950원에 거래 중이며, 하나금융지주(5만 9700원)와 우리금융지주(1만 6050원)의 주가도 각각 3.08%, 4.01%씩 내렸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1.13%가량 하락한 것에 비하면 낙폭이 큰 편이다. 이들은 지난 4일에도 4~6%대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처럼 은행주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계엄령 사태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심화된 영향이다. 외국인은 지난 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4071억 원어치를 순매도했으며, 이날 오전에도 118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은행 등 금융권의 경우 투자자 중 외국인의 비중이 큰 편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국내 증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도 유독 은행주의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배경에는 '밸류업'이 자리한다. 밸류업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분류되는 은행주들은 올해 들어 증시 부진에도 상승 랠리를 이어 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계엄 사태와 이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밸류업 정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면서 대장주인 은행주들이 더욱 타격을 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금융업의 경우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업종이라 정치적 리스크가 큰 편이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지속성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이라며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끌고 가야 하는 데 정세 불안이 금융주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융산업의 경우 당국과 긴밀하게 협의해야하는데 정세가 불안정하다보니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금융주의 상승 폭이 커서 다른 산업보다는 하락 폭이 큰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경제심리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며 주가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경기둔화로 인해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하향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두 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면서 시장금리의 추가 하락을 가정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 업종의 순이자마진도 기존보다 낮춰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