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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칼럼] AI교과서 너무 빠르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만학도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력보다 커넥션이 중요한 사회의 공고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모대학의 모교수에게 강의를 주실 수 있는지 타진하는 손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 답신이 와서 나는 그 교수를 만나러 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모교수는 내가 전공한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면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론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그 개념에 입각해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한국이 여론조사로 공천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여론조사를 공천에 사용한 민주당의 2002년 대선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도 설명 드렸다. 여론조사란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그 오차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은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인데 0.01%라도 앞선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룰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한국 사람들 너무 겁이 없다”라는 말까지 드렸다. 그러자 그 교수는 웃으면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법이 없어서라고?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 다기 보다 일을 쉽게 신속하게 처리하려다 보니 아무 방법이나 사용하는 것 아니던가?

 

난 요즘 AI 교과서 채택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도 너무 용감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이 급해 그토록 서두른단 말인가? 다른 나라들은 AI 교과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며 여러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는 그런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용감하게 밀어붙이는 인상을 준다. 그 결과 세종시는 채택률이 9.5%, 대구시는 100%라는 보도가 전해진다. AI 교과서 채택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분명 새 기술은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킨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많은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AI를 훈련하고 가르치기 위한 초기 단계의 방법을 잘 모색해야 한다. 윤리적 원칙에 입각해 기술을 사용하고 모든 학습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AI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성을 따져봐야 한다. 교육 지도자는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학생 성과를 분석하고 콘텐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AI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과 전통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하기 위해 사례 연구는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실제 부가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구를 자신의 교육 방식에 잘 통합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혁신을 장려하고 교사들의 디지털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워크숍과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교육 변혁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필수이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교육적 접근 방식과 디지털 도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인식 캠페인을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교육 분야에서 AI를 사용하는 데 따른 윤리적 틀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안심할 필요가 있다.

 

AI 교과서의 성공적인 전환을 보장하려면 이처럼 거쳐야 할 과정들이 많다. 분명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이 많지만 폐단도 적지 않다. 양자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AI 교과서 채택을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네티즌 의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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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 2025-04-05 22: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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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도구' 이자 '똑똑한 보조교사인 AI 디지털 교과서"는 한 때 교육정책으로 추진된 바 있으나 실패로 끝나면서 많은 예산이 낭비된 바 있지요. 시기가 이르다는건 바로 이런 사례가 재연될 것을 우려해서지요.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기위해 현실성이 없거나 미비한 수준의 준비로 중차대한 백년대계의 교육정책을 섣불리 추진하는 것은 단지 모험일 뿐이며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할 것입니다.

  • 유평공
    • 2025-04-01 16: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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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교육 변혁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필수이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교육적 접근 방식과 디지털 도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인식 캠페인을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교육 분야에서 AI를 사용하는 데 따른 윤리적 틀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안심할 필요가 있다. 절대공감하게 됩니다.
    성장제일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 홧병과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 코리아 전매특허 공용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뜻있는 국민을 양성하고 품격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있음을 잊지말길…

  • 주필님멋쟁이
    • 2025-04-01 14: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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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더니 단 한 번도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추진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입시를 치렀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에 딱 한 번만 시행되고 사라질 제도가 적용됐습니다. 혼란스러워 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정치인이나 일부 공직자의 치적사업에 불과합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빠르게 성과를 거두는 것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은 여야가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테스트베드에 불과합니다. 정말 한심한 노릇입니다.

  • Kenny
    • 2025-04-01 08: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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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프로젝트를 진행 중 KTV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여러 개의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의 제약으로 한개는 AI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나중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여덟개 중 하나는 AI로 작성한 것이니 찾아내보라고 했는데 아무도 못찾더군요. AI 교과서가 AI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위한 건지, AI가 정리한 지식을 알려주는 건지 궁금하군요. 전자라면 4차 산업혁명 기술 관련 학생들보다 일반교사들이 우월하다고 볼 수 없기에 학습지도가 어려울 것이고, 후자라면 굳이 AI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요?

  • Kenny
    • 2025-04-01 08: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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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에게 주필칼럼을 읽고 세줄 정도로 댓글을 달 수 있게 해달라고 하니 아래처럼 써주네요. 저도 AI와 같은 견해입니다만, 어떤가요?

    이 글은 한국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신중함보다 신속함이 우선되는 경향을 비판하며, 특히 AI 교과서 도입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기술 도입에서도 충분한 검토와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한라산
    • 2025-04-01 0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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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정서가 빨리빨리의 울타리에 담가져 있다
    교육의 정서로보아 아직은 덜익어 보이는듯한 AL 광주리로 담아 내기에는 다소 그 폭과 깊이가 좁아 보이는것 같은
    성급함도 보인다

    예습과 복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 두루봉
    • 2025-04-01 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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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의 논지에 공감입니다. 우리는 너무 즉흥적입니다. 방향이 맞다고해서 그 효과도 선한 것은 아니지요. 의대 증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부작용을 염두하지 않아 죽지 않아도 될 4천명이 넘는 국민생명을 앚아 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입원실을 찾지 못해 소위 뺑뺑이돌다가 말이지요. AI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충분히 검토하고 시행해도 늦지 않을텐데, 어린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듯해서 씁쓸해요. 제발 교육 백년대계라는 말을 잊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 아침
    • 2025-04-01 07: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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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금도 절반은 여론조사를 통해 뽑고 있는 것인데... 그때와 지금은 또 조금 다른 상황 같습니다. 당시 가능성이 있는 후보들이 급하게 정해진 측면도 있었고, 단일화라도 해야 겨우 가능성이 생기는 상황이기도 했고, 정말 급하게 만들어낸 절충안이 여론조사였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정치공학적 억지는 맞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실패하기는 했죠. ^^;;; 하지만 지금은 그정도로 급하게 만든 후보도 아니고 룰 준비 기간이 짧은 것도 아니니 후보 선출 룰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칼럼의 문제의식에 대해 공감합니다.

  • 소강
    • 2025-04-01 07: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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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AI시대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교과서까지 서둘러 바꾼다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았든가요. 그래서 최교수님의 시의적절한 칼럼이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다는 일상적인 표현도 너무나 적절합니다. 항상 좋은 칼럼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되세요.

  • Vm
    • 2025-04-01 07: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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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당시에 디지털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데, 디지털교과서의 크고 작은 오류들로 인해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쟁을 이유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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