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참사 후유증으로 소방관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면서 정신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조직 내 불이익 우려로 현장에서는 상담·치료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방관 10명 중 4명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을 경험했다. 자살 고위험군은 3141명(5.2%), PTSD를 겪는 소방관은 4375명에 달했다. 최근 3년간 경기지역에서는 7명이 우울증 등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투입된 소방관 심리치료 상담 인력은 102명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담당한 상담은 연간 7만 9453건으로 1인당 779건에 달했다. 소방공무원 정신치료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소방청의 ‘마음건강 상담·검사·진료비 지원’ 사업 예산은 3년째 5억 6000만 원에 묶여 있고, 자살 고위험군 전문 치료 프로그램 예산도 6억 9000만 원으로 동결됐다.
현장 소방관들은 상담 접근성 문제도 토로한다. 한 소방 관계자는 “직접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 본부까지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교대근무가 잦아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다”며 “치료를 받으려면 휴가까지 써야 해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경기도119마음건강센터를 운영하며 1대1 전문상담과 집중 케어를 제공하고 있지만, 상담 인력이 4명에 불과해 도내 소방공무원을 집중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직 내 문화도 걸림돌이다. 한 소방노조 관계자는 “자기 신분이 직접 노출되는 방식이다 보니 ‘정신질환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길까 두려워 상담을 꺼린다”며 “상담을 받으려면 휴가를 내거나 비번 날을 활용해야 해 원하는 만큼 이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소방관의 정신질환 문제가 단순 개인 차원이 아닌 제도적 과제로 보고 있다. 상담 인력 확충과 예산 증액, 비밀 보장 장치 마련 등 종합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소방청도 “예산 확대와 상담 체계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며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경기신문 = 안규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