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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도시침술

 

지난 1972년 중국은 1949년 중국공산당 창건 이후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문을 열었다.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뚱 중국 주석이 中美정상회담을 북경에서 개최한 것이다. 당시의 중국의 외교적 태도를 세상은 "중국이 마침내 '竹의 장막'(bamboo curtain)을 거두었다"고 표현했다. 그 정상회담의 여러 행사들 가운데, 중국은 서방에 '특별메뉴' 한 가지를 선보였다. 침술(鍼術)이었다. 폐 절제 수술을 받을 환자를 침으로 마취하고 집도하여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환자는 수술 중에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서방세계는 마치 접시 백 개를 성공적으로 돌리는 마술을 본 관중들처럼 충격을 받고 놀라워했다. 중국은 그렇게 5천년 유구한 역사와 그 시간 동안 쌓인 중화(中華)의 내공을 입증하였다.

 

좀 의아하겠지만, 지방자치제도와 그 성공은 이 동양의 침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제는 학술용어로 자리잡은 도시침술(都市鍼術. urban acupuncture)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도시의 특정지역을 심모원려(深謀遠慮)의 특별한 기획과 수술환자에게 침을 놓듯이 엄중한 자세로 재생하여 부활시키는 것이다.

 

 

◇브라질 꾸리찌바
유엔, 선진국의 권위 있는 연구소들, 하버드대학 등에서 해마다 전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지자체)를 뽑아 순위를 발표한다.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어느 한 도시일 것이라고 답한다. 틀렸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부동의 1위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다. 전세계 지자체장이나 소속의원들, 공무원들이 마치 성지순례하듯 찾아가는 도시다.

 

버스전용차로+중앙승하차 정류장+선불요금제를 통한 대중교통 혁명,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쓰레기와 먹거리 교환, 도시전체를 잇는 녹색공원 네트워크 등이 모두 꾸리찌바가 원조다. 거듭 말하지만, 좋은 정치와 유능한 정치인은 국민의 생명을 자신과 그 가족의 목숨처럼 여기는 존재다. 식구들의 넉넉하고 만족스런 삶을 위하여 하늘이 내린 사명을 수행하듯 성실한 아버지처럼, 고슴도치 가족의 다정하고 헌신적인 모성처럼 돌보는 리더들이다. 최소한 그 수준을 지향해야 한다.

 

하늘에서 지구촌을 내려다보는 큰 어른은 성동구든 대한민국이든, 꾸리찌바든 브라질이든 그 어디 한 곳이 잘하면, 내가 거기에 침을 놓았다고 할 것이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우리나라 공무원들 모두가 필독해야 하는 책이다.

 

 

◇콜롬비아 메데진
메데진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의 고향이다. 그는 고향과 조국 콜롬비아를 마약의 수도, 즉 생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그 기반에서 세계 7위의 부자가 되었다. 당시 이 도시는 죽임과 죽음의 도시였다. 살인율은 10만명 당 400명 전후로 세계 최고였다. 지역의 소년들은 마약카르텔이 주는 단돈 100불에 경찰관 한 명을 쏴죽였다. 오늘날, 메데진의 살인율은 10만명 당 10명 정도로 30년 전에 비하여 1/40로 줄어들었다. 세계 마약산업의 수도로 여겨졌던 콜롬비아, 그 중심이었던 메데진은 지금 없다. 꾸리찌바 못지않은 혁신도시로 부활했다.

 

혁신적인 시장들은 메데진에서도 가장 불결하고, 열악하고,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살고 싶지 않은 동네에 침을 놓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 주변도시는 물론, 나라 전체가 청정국가가 된 것이다. 여러 분야, 특히 기후환경, 생태, 교통, 안전, 교육, 취업률, 문화예술, 도시의 활성화 등에서 전세계 최고수준의 지자체로 평가받으며, 외국의 지도자들, 지자체 공무원들의 방문, 견학, 연수가 끊이지 않는다. 가난하고 더럽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했던 그 도시에 세계 최고의 도서관, 공연장, 벽화공원, 생태공원, IT 밸리가 들어섰다. ‘기적의 도시, 메데진’이라는 책이 있다. 일독을 권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이 도시는 30여년 전, 필자가 일하며 살던 곳이다. 젖먹이 딸을 둔 거주자로서 맞이한 첫날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늦잠을 잤다. 그 얼마 후, 총성이 나를 깨웠다. 새벽 4시. 다음 날,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간밤의 총소리를 말했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은 그런 곳이야. 밤 늦게 다니면 안돼.”, “총이 필요하면 나에게 얘기하고.” 그 밀은 나에게 미국 체류기간 내내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하나의 수칙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는 지난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살인율이 최고였다. ‘살인도시’(murder city)라는 나쁜 이름을 갖게 되었다. 60 넘은 사람들은 지금도 장학퀴즈 상식처럼 디트로이트를 ‘살인도시’로 기억한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은 ‘살인의 수도’(murder capital)처럼 여겨져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대전쯤 되는 거리에 있는 신도시에 피신하듯 살고 있었다. 우리 집도 나중에는 그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무서웠던 도시가 지난 30여년 동안, 마치 콜롬비아의 메데진처럼 변화된 도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도시 전체에 동네마다 일일이 ‘침을 놓는 일’은 예산확보가 어려워서 비현실적이다. 침술이 가해져서 가장 효과가 높을 것으로 조사되고 분석이 이루어진 지역에서 재생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뒷골목 이면공간을 주민들을 참여시켜 함께 녹지화하고, 커뮤니티 공간을 재구성했다. 다운타운 핵심도로의 보행환경, 안전표지, 조명 등을 개선하여, 사람의 생명과 편의를 우선하는 변화를 가했다. 오랫 동안 방치되어 있는 공간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거나, 새로운 용도를 집어넣어 활성화시켰다. 주차장 등 차량 위주의 공간을 공공광장, 녹지옥상, 보행자 중심구조로 전환했다.

 

자동차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가 보행자중심, 즉 인간중심의, 안전하고 살만한 도시로 변한 것이다. 살인사건은 물론 차량납치 등 주요폭력범죄율도 1/3 정도로 줄어들었다. 30년 넘게 침술을 가한 결과는 정말로 놀라웠다.

 

 

◇서울시 성동구
이 ‘특별구’(청장 정원오)는 몇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주민들의 일상에 적용하여 OECD가 그 정책을 전세계의 지자체에 권유했다. 우리 기초자치단체 하나가 온세상이 본받는 자치단체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성동형 스마트 쉼터’와 ‘스마트 횡단보도’가 2024년 OECD의 공공부문 혁식사례로 선정되었다. 이 두 정책은 스마트 기술을 일상생활의 안전 및 편의와 결합시켜 주민참여-민관협력 방식으로 도시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 쉼터는 폭염-한파-미세먼지 등 기후변화 대응기능, 범죄예방을 위한 모니터링 기능, 공공wi-fi와 휴대전화 충전기 등의 생활편의 기능을 갖춘 버스정류장이다. 스마트 황단보도는 어린이 보호구역 등 교통사고 위험지역에 자동차번호인식, 음성안내, 스마트 조명 등 8가지 기능을 결합, 보행자 안전을 강화한 사례다. 교통사고가 21.5% 감소했으며, 같은 구간에서 사망사고는 제로가 되었다. 황단보도 정지선 위반건수도 83.4% 감소했다.

 

정청장은 ‘성동을 바꾸는 100가지 약속’,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도시의 혁신, 스마트시티’ 등의 저서에서 자치제도에 관해서 큰 선배들 못지 않은 신념을 피력하고 실력을 발휘했다. “지자체는 단순히 하부 행정기관이 아니라, 1차적인 주권기관으로, 주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의 토대”고 역설했다. 스마트행정과 참여자치를 결합하여 포용적이고 혁신적인 지방자치의 모델을 제시했으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정책을 전국 최초로 추진했다. 현재 100개국 이상이 성동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데 국민의 힘 지지자들이 “구청장은 이 사람을 찍어야 한다”며 그를 키워주었다고 한다. 특별하다. 우리나라에서 그간 볼 수 없었던, 참으로 놀라운 정치현상이다. 정원오는 최근 여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박주민, 김민석, 조국, 전현희 등을 크게 앞섰다.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불성실한 공직자들, 특히 지자체장, 소속 의원들과 공무원들의 인중과 명치에 대침을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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