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 부국장 겸 여론매체부장 이재교 命 편집국 사회2부장 겸임 9월2일자
가평군 가평읍이 지난달 30일 가평읍 용추계곡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이번 정화활동에는 새마을회, 용추번영회, 가평읍 주민자치위원회, 66사단 군장병 등 9개 단체 250여명이 참가해 막바지 환경정화 활동을 통해 피서객이 가장 많이 찾는 용추계곡 주변을 청소하며 청정가평 이미지 제고 및 자연환경 보전에 나섰다. 이날 용추계곡 주변 7km에 걸쳐 각종 쓰레기와 오물 등을 대대적으로 수거함으로써 청결하고 쾌적한 지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성기 가평군수, 양세봉 66사단장, 김정한 경기농림진흥재단 대표이사, 백병선 가평읍장, 허금범 새마을지회장, 오구환·송기욱 도의원, 장기원 군의원, 김용기 자유총연맹 가평군부지장 등 각 기관단체장이 동참해 참가자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행사를 주관한 백병선 가평읍장은 “민·관·군이 하나가 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뜻깊은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도 깨끗하고 쾌적한 가평군을 만들기 위해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지속적인 환경정화 활동 등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신문 인천본사 사장에 유성보(53·사진) 본부장이 1일 취임했다. 유 신임 사장은 2009년까지 경향신문에 근무한 뒤 인천경향신문 부국장 및 상무를 거쳐 본보 인천본사 본부장을 지냈다. 기자시절 유 대표이사는 ‘부천시 세금횡령사건’(1994년)과 ‘등록금 1천만원 시대’(2008년)를 보도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등 특종상을 다수 수상한 바 있다.
경기신문 인천본사가 2013년 9월 1일을 기해 정식 출범합니다. 경기신문은 인천본사 출범에 앞서 지난 7월 12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1115-4에서 인천본사 개소식을 가졌습니다. 인천본부의 본사 승격은 본부 출범 후 인천지역에 보다 많은 뉴스를 신속하게 전달해 달라는 독자 여러분들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천은 현재 인구 3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전국 3대 도시 인천은 국제공항과 항만, 경제자유구역이 위치해 대한민국 경제수도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인천 유치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최는 인천이 경제수도를 넘어 동북아 중심도시로의 급부상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인천은 지금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천본사는 대변혁기의 인천이 성장가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기사를 지면에 담아내겠습니다. 또 시민들에게 가치 있는 정보제공을 위해서도 심혈을 쏟겠습니다. 경기신문은 인천본사 출범을 계기로 수도권 제일의 지역 정론지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바랍니다.
Q.수원시에서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상가(노래연습장)를 임차해 영업 중으로 올 9월 30일부로 계약이 만기됩니다. 임차 조건은 보증금 8천만원에 임대료는 월 200만원 수준입니다. 여기에 계약 당시 권리금 4천만원을 건물주에게 제공했습니다. 현재 저는 재계약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재계약을 하지 않게 되면 권리금을 건물주한테 돌려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합니다. A.권리금에 관하여 판례(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2다25013판결)는 ‘권리금이 수수 후 일정한 기간 이상으로 그 임대차를 존속시키기로 하는 임차권 보장의 약정 하에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인에게 지급된 경우에는 보장기간 동안의 이용이 유효하게 이루어진 이상 임대인은 그 권리금의 반환의무를 지지 아니하며, 다만 임차인은 당초의 임대차에서 반대되는 약정이 없는 한 임차권의 양도 또는 전대차 기회에 부수해 지신도 일정 기간 이용할 수 있다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정기간 이용케 함으로써 당초 보장된 기간 동안의 이용이 불가능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임대인은 임차인에 대해 그 권리금의 반환의무를 진다’라고
통합진보당이 기어이 큰일을 냈다. 대한민국 종북의 총본산으로 의심받아온 통진당이 결국은 내란음모를 꾸미고 국가기간시설을 타격하기 위해 현장답사까지 했다고 한다. 작년 총선비례대표선거후보가 되기 위한 당내 예비선거 부정과 종북행위로 국회윤리위원회에서는 이석기, 김재연의 의원자격을 심사하기로 여야가 결정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공안당국과 사회 일각에서만 통진당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우리 정치권이나 국민들은 몸속의 암덩어리를 제대로 진단조차 하지 않았고 방치했던 것이다. 종북세력이 제도권까지 진출해서 오늘날 노골적으로 북을 옹호하고 대한민국정부를 ‘남쪽 정부’로 격하하고 북을 조국으로 떠받들게 된 것은 민주화에 따른 대북경각심의 약화와 관련이 있다. 누가 이들 종북세력의 간덩이를 키웠는가?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우리는 민주화를 지켜내고 공고화하기 위해서라도 민주화에 휩쓸려 들어오거나 민주화를 틈타 잠입한 종북세력을 찾아내 분리, 고립시켜야 했으나 정치권은 한편으로는 미적대며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들을 감싸고 합법적 공간에 둥지를 틀 에너지와 공간을 제공했던 것이다. 제도권 내 종북세력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국가기밀을 북으로 전달하고
태양이 달궈지는 속도로 들판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담장에 걸쳐진 호박은 속절없이 붉어지고 과수원 철망을 빠져나온 단내가 날것들을 불러들인다. 바삭하게 마른 고추를 손질하는 노파의 손길 뒤로 바지랑대에 앉은 고추잠자리만이 한가롭다. 텃밭,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고추는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해진다. 잘 익은 고추 몇 개 따서 찬밥에 물 말아 고추장에 푹 찍어 먹으면 입안이 얼얼하면서도 달큼한 고추 맛에 먹고 또 먹던 생각을 하면 침이 고인다. 막 들기 시작한 고구마 밑을 파서 주먹만 한 고구마를 캐기도 하고 설익은 콩을 아궁이에 구어 입이 새까매지도록 까먹으며 서로 바라보고 낄낄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귀밑머리 희끗한 세월이 되어 그때를 회상한다. 얼마 전 동해에서 서해로 해안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했다. 영덕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던 중 일행이 슬그머니 나가더니 옥수수 한 망을 사와 군불을 피우고 거기에 옥수수를 구웠다. 반은 익고 반은 타고 설익은 옥수수를 뜯어먹으며 서로 쳐다보고 웃고 난리도 아니다. 다리 밑에서 머리에 수건 두르고 입 언저리는 시커멓고 며칠째 노숙을 하다 보니 꼴은 엉성하고 여전 드라마 속 거지왕 춘삼이 오빠다. 웃
꽃잎 지는 소리 /정명희 지상 저편으로 날아가는 일들 그 속에 흐느껴 떨어지는 비파소리 윤회적 낙하에서 비상을 본다 피는 것보다 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서걱 거리는 몸짓 이별의 그 밤 꽃잎 지는 소리 함께 들린다 문화 가 - 00224<일간> 2002년 6월 15일 창간 시인은 수원의 정자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대외협력위원장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꽃이 지게 마련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소생과 사멸을 맞는다. 대자연의 이 이치를 거스르지 못하는 법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생할 때보다 사멸할 때 그 아름다움이 더 커지는 것은 왜일까? 꽃은 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워 보이며, 해는 뜰 때보다 노을로 질 때 더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는 사멸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 아름다움도 느낀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한순간의 사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 세상 만물이 윤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움이 또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의 눈물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꽃잎이 지는 순간 다시 꽃잎이 피어나기
동산고와 인천고는 50∼60년대를 풍미한 야구명문이다. 인천 고교야구의 양대 산맥인 이들 학교가 당시 봉황대기와 청룡기를 번갈아가며 석권해서다. 특히 동산고는 1955년부터 3년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 후 제물포고가 가세하며 인천을 야구의 도시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때부터 인천이 구도(球都)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인천야구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와 다름없다. ‘한국야구사’를 보면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는 황성기독교청년단 회원들에게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가르쳤으며 이듬해인 1906년 독일어학교팀과 야구경기를 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야구 경기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6년 앞선 1899년 인천고 전신인 인천영어야학회학생들이 했던 베이스볼이라는 서양공치기가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라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그 근거로 당시 1년 재학 중이던 후지야마 후지후사라는 학생이 자신의 일기장에 서양공치기인 베이스볼을 즐겼다는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인천야구는 활발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경인기차 통학생들로 구성된 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