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부드러운 청자 빛 하늘 아래는 흰 구름이 자유롭다. 구름은 호랑이 머리가 되었다가 개의 형태이더니 바로 고양이 꼴이다. 흐르면서 변하는 게 구름이다. 변하기 때문에 눈 주고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근자에 나는 하늘 바라보는 재미가 유별하다. 눈이 피로해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글을 쓰다 문장이 막히면 나가서 하늘을 본다. 글의 주제가 마땅치 않아도 오늘 같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만나면서 뭔가가 머릿속에서 새롭게 뛰어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10월도 저물어 삼십 일이 되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온다. 이 해도 60여 일 남았다. 계절은 겨울이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오늘도 숲의 그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의 빛(彩)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먼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아도 색채감에 딱 맞는 언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이룰 수
구름은 하늘에 가을의 시를 쓰고 있다. 농가의 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 가을바람에 다이어트를 하고, 마당 귀퉁이 늙은 호박은 보름달 같이 밝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우리의 가을 정취요 자연의 서경이요 서정이다. 그런데 요즘은 ‘안녕하시냐?’고 문안드리기도 어색하다. 코로나 방역 업무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며 만남의 주의 사항 등으로 몇 안 된 친구도 만나기가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런데 눈 뜨면 TV에서는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얼굴이요, 뒤질세라 트로트 공화국이나 되는 듯 이 방송 저 방송에서는 분별없이 매시간 꼴사납게 대중가요에 매달려 있다. 드라마에서는 피 묻은 손목을 상자에 넣어 택배로 보내고 칼과 총으로 살인하는 게 직장의 업무처럼 자연스럽게 방영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네 퇴직금 50억 이야기는 지면이 아까워 생각하고 생각하다 삽입한다. 저녁에는 부산에서 올라온 H 회사 대표 금천(錦川)과 한정식집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실 무렵 나는 말문을 열었다. 이 고장 원로 언론인이 낸 산문집 『흔적』이라는 책에 있는 내용의 글을 아래와 같이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의 서사이다. 저자로서 전 언론
어린이놀이터 옆 정자나무 쉼터에 걸터앉아 어린이들 노는 모습을 본다. 손자 또래 아이들 대여섯 명이 콘크리트 의자에 가방을 얹어놓고 신나게 놀고 있다. 무슨 놀이인지 한 아이는 호루라기를 불고 다른 아이들은 도망을 치고 뒤를 쫓아가기도 한다. 검은색 반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었는데 한 사람 같이 토실토실 건강해 보인다. 사랑스러운 생명의 풋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놀다 어디에서 다시 모이자고 했는지 썰물같이 사라져 갔다. 다른 어린이가 아빠 손을 잡고 등장한다. 아이는 그네를 타고 싶은데 잘 나가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갔다 뒤로 밀려오는 반동을 이용해 재밌게 타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빠가 다가간다. 아들을 그네에 앉히고 그넷줄을 꽉 잡게 하고서 밀어 높이 띄워준다. 아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사진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웃는다. 아빠의 환한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한동안 신나게 놀다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얼마 후 동생인 듯싶은 서현이가 엄마와 함께 나타났다. 엄마는 딸 서현이가 어린지라 눈 안에서 놀도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넷줄을 손으로 잡는 법도 알려주고 서현이를 발판에 잘 앉히고 조
책의 은혜를 입고 살아왔다. 책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나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자유 독서’ 시간을 즐겼다. 때문에 책 속에서 스승과 선배와 성인을 만났다. 철들면서는 봉급의 몇 퍼센트를 떼어서 서점으로 책 사냥 가듯 찾아가 좋은 책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독서량이 불어나면서부터는 책을 엄격히 가려서 읽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고 믿었다. 경전은 소리 내어 읽었고 책을 통해 자신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 ‘기준 잡힌 인생을 만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만나며, 독서와 사색하는 자를 만나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읽고 있는 책이 다 되어 가면 두뇌의 연료가 바닥난 것처럼 불안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는 푸시킨의 시에서처럼 삶의 위로와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10여 일 지나면 추석이다. 추석을 맞기까지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고통의 터널을 견뎌왔다. 음력 유월의 유두를 중심으로 중복과 대서, 말복의 더위 속에서 코로나 예방과 방역의 짐을 짊어지고 묶인 발로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이때 나는 내 어린 시절 고향의 삶을 생각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 잎사귀 하나가 가을을 알아차리게 한다고 했다. 나뭇잎 하나에서 자연의 영혼을 읽어내던 선조들 정신을 우러러 생각하게 된다. 처서 무렵이었다. 선풍기를 껴안고 잠들다시피 했던 금년 여름밤은 기온이 내려갈 줄 몰랐다. 자다가 일어나 불을 켜고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시를 메모했다. ‘선풍기 앞에서/ 나는 생각해 봅니다./ 고향집 앞 시냇물에서/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던 때를/ 나의 행복은 철없이 지내던/ 그 시절 속에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뒤/ 나는 슬픔으로 배불렀습니다.’ 금년 여름밤은 하룻밤 보내기가 일 년보다 더 지루한 것 같았다. 그런데 불타는 하늘 아래에서도 계절의 운행은 변함없는지 새벽이면 바람이 선선하다는 느낌과 함께 냉기 머금은 공기가 살갗에 와닿았다. 처서라고 절기의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살맛 돋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역시 우주라는 자연 속 가냘픈 생명인가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앉아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을 읽었다. 그분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일주일 모자라는 일 년 만에 석방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라서 그는 출판사(삼민사) 일을
일 년 가까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 참고 살라고 하니 참았다. 그게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눈만 뜨면 전파하고 있어 인내하며 기다렸다. 인간이란 생명체로 살아오면서 자연에 대한 죄와 빚이 많아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한편 죄 닦음이라고 생각해두자고 마음 다스렸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렇듯 코로나 19에 발목이 묶여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끼리의 대여섯 명 정도는 만나도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어렵게 다니러 온 아이들을 만났다. 맏손자부터 껴안아 주었다. 밤에는 종남산 아래 산장에서 방역수칙 지켜가며 식사를 했다. 사는 맛이 느껴졌다. 가족 사랑과 함께 사람 사는 게 이 모습이구나 싶었다. 마음 풍요롭고 가슴 밝아졌다.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질 때 생활인의 기쁨이 있다는 상식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자기 삶의 주거 공간으로 돌아갔다. 떠나는 아이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녀석들을 한 해에 한 번 본다면 10년이면 열 번 만난다는 것이구나 싶었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일인용 침대 위로 꽉 찬 대자리가 깔
약속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랐다. 운전사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가 모래내 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지막 손님으로 30대 중반 나이의 여인이 올라왔다. 그녀가 신용카드를 체크하는 기계에 대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시 다른 카드를 꺼내 기계에 댔다. 기계는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나무라듯 말했다. 당황한 여인의 얼굴에는 놀라움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그녀는 기사에게 조금 있다 계산하겠다고 말하고 나의 뒷좌석으로 가 앉았다. 그냥 보기엔 여유 있는 가정의 부인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히 생활하며 지내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다시 기계 곁으로 가서 카드를 댔다. 또 실패였다. ‘내 카드를 줄까. 안 받는다면!’ 잠시 망설이다 선뜻 카드를 내밀었다. 눈으로는 꼭 받으라는 사인을 보내면서. 그녀는 내 카드를 받아 기계에 댔다. 기계는 또 ‘조금 전 사용한 카드입니다.’라고 딴소리를 했다. 기사가 재빨리 어딘가를 손대니 그때서야 받아들였다. 여인은 한숨을 쉬더니 내게 카드를 돌려주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뒷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약속한 사람을 만나 추어탕을 먹기로 했다. 식대는
가난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책 읽고 글 쓰며 보람 있는 탑을 쌓고자 했다. 수필은 진실을 바탕으로 자기 철학을 실현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문학 속의 문장이다. 삶의 선용(善用)을 추구하는 길이다. 더불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마음은 조금 무거워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선생님을 만나고자 가는 길은 항시 그랬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멀리 사는 시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분과 함께 고하(古河) 선생님을 찾아가 뵙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며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진정성이 있어 응하기로 하고 오늘 집을 나섰다. 근래에 선생님이 낸 시집을 신문 신간 소개에서 읽었던 터라 서점으로 가 시집을 사가지고 선생님이 계시는 고하문학관으로 갔다. 뒤에 온 C 시인은 ‘선생님께서 요즘 시집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한 권 얻고자 했다. 선생님은 출판사에서 몇 권 주었는데 다 나가고 우편으로 보낸 책이 되돌아온 게 몇 권 있다고 하시며 난감한 표정이었다. 순간 서둘러 식사하러 가시자고 하여 모시고 차를 타고 가는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어느 날 안00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
봄은 꽃의 계절이기 전에 씨앗의 계절이라고 했다. 하나의 예로, 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지어 먹으며 씨앗을 심기 전 그 씨앗들을 확인하였다. 조상들은 겨울 동안 곡간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자 일부러 오곡(五穀)밥을 지어 먹었던 것이다. 5월의 숲은 봄의 완성을 위한 녹색 볼륨으로 충만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은 자기 본래의 모습과 체질에 맞게 무성해지면서 커다란 숲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의 봄은 숲과는 달리 예상치 못했던 질병으로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우리 집에는 외국에서 사업하던 아들이 코로나로 입국하여 친구 사업을 돕다 발목을 심하게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장기간 고생하는 아들을 보면서 삶이란 게 능력과 성실만으로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 약해질 때가 있다. 서점 나들이를 했다. 아들에게 책이라도 한 권 읽게 하고 싶어서였다. 『아들아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글을 읽어라』 는 책을 샀다. 책을 들고 2층으로 가서 아들에게 줄 티셔츠도 하나 골랐다. 카드로 계산하면서 젊은 주인에게 말했다. 코로나 시대에 고생 많겠다고. 웃고 있는 청년에게 다시 말했다. ‘나 같이 나이 든 세대들이 그동안 세상
걸어야 할 운명의 길 같이 아침에도 산길을 걸었다. 갑자기 칸트의 산책에 따른 생각이 떠올랐다. 칸트는 일어나서 홍차 두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산책길에 나섰다고 한다. 동네 사람은 산책길의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그만큼 그는 정확히 그 길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달력의 여백에 그날 산책길에서 전날과 달라진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적어두었다. 칸트는 아침밥은 간단하지만, 저녁밥은 자신이 직접 요리하여 네댓 시간 동안이나 즐겼다. 그의 요리는 그 시절 그 시기에 가장 알맞은 음식을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불어날수록 세월의 유속은 불자동차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봄에 새순의 차를 달여 마시면 마음 가벼워지고 두 겨드랑이 밑에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한 해가 지나가고 내일모레면 차나무 밭에서 풋것의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신춘문예 시상식을 간략하게 마친 다음 날이었다. J 신문 논설위원과 문화부 기자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어느 음식점 2층 독방에서 만났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업무적으로 만나 수고한 관계지만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 만났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