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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정신의 밥

 

마음 정갈스럽게 하고 생각 가다듬어 글 쓸 구상을 하고자 가까운 산길로 나가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본 풍경이다. 어린 딸과 아들은 둘이 나란히 그네를 타고 있는데 앞 의자에서는 엄마 아빠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나도 아이들 키우며 저런 시절이 있었지. 머릿속에서는 시골에서 부모님 모시고 살며 인간답게 살았던 고향 풍경이 실타래 실 풀리듯 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이용복 가수의 ‘어린 시절’ 노래가 가슴속에서 리듬을 탔다.

 

자기 아이들 그네 타는 모습을 보며 젊은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애들이 커서 검사, 의사, AI 기술자, 재벌총수-.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 올린다며 약을 먹이는 부모, 정신병동에서 문제집을 푸는 아이, 마약 밀매 조직의 손길이 뻗는 교육열과 그 현장-.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에 친숙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던 때라 시기심 없이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으며 살아서 다행이지 싶다. 아이들도 착하게 성장해 남 속임수로 억울하게 당했을지언정 그릇된 행동 하지 않고 독립해 잘 지내고 있다. 최소한 돈 버는 능력 기르다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은 육신을 위해 곡식으로 된 ‘밥’을 먹어야 한다. 이것을 ‘육신의 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가? 아니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가? 를 고민하는 사람은 ‘정신의 밥’이 필수다. 또한 슬기로운 사랑과 지혜로운 죽음을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터득해야 하며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인가를 고심하는 사람 역시 ‘정신의 밥’을 먹어야 한다. 벌 나비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생명을 끊듯, 처절한 자기 관리를 위해서도 ‘정신의 밥’은 필요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풍요한 목적이라고.” 인문학의 목적은 인간성의 회복과 인격의 완성이요 행복한 삶이다. 인문학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기원전 106~43)가 교육프로그램을 짤 때 원칙으로 삼았던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했다. 이 말이 ‘교양 교육’의 의미로 확장된 건 2세기 무렵 로마의 수필가 겔리우스에게 와서였다고 한다.

 

동양에서의 인문학은 인문(人文) 즉 천문(天文)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상과 문화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것을 좁혀 간략하게 말한 것이 (문, 사, 철)이다.

 

지식(법·경제·과학·기술)은 많으나 거기에 인간이 빠지고 인격(人格)이 매몰된 현실에서, 당장 눈앞 이익만 생각하고 투기의 대상만을 찾는 분에게는 할 말이 없다. 인문학은 지하수 같은 것이어서 땅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하수가 말라버리면 자연의 생물들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풍요한 목적이라고 학생들에게 외치지 않고 속삭이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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