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떠기(찰떡), 증편, 감자 배고자(녹말가루 만두피로 빚은 고기만두), 짐치(김치), 마르꼬프채(당근채), 고사리채, 국시..." 김 베라(85) 씨는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 위해 곧 들이닥칠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우리 음식을 준비하며 그 이름을 말해주었다. 평소에도 음식상을 차리고 이웃들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기를 즐겨 하는 김베라 비단길 합창단장은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새해가 되면 이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해 놓고 공부하러 도시에 나가 있던 우리들을 기다리셨소” 라며 웃으며 말했다. 2025년 새해를 맞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은 베라 단장네처럼 가족들이 모여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행운과 건강을 기원한다. 시계 바늘이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자정을 가리키는 순간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소원을 빌고 새해를 축하한다. 이때부터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도시의 밤하늘은 대낮처럼 환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나 시내 광장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둔 폭죽을 함께 쏘아 올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국과의 연결을 이어가며 2025년 새해를 맞은 고려
파미르고원에는 만남이 있다. 태초의 원시 자연과의 만남.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와의 만남.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파미르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과의 만남. -김상욱 1천300년 전, 서역과 파미르(구 페르시아어,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거쳐 인도로 들어간 혜초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에서 파미르에 대해 '차가운 눈더미가 얼어 있고, 땅이 갈라질 만큼 바람이 매섭게 분다'라고 묘사했다. 태양신은 구법승 혜초에게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주질 않았던 모양이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키르기스스탄의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주의 서부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파미르 고원은 천산·카라코람·힌두쿠시 산맥 등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봉준령들에 둘러싸여 있어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그때 보다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고 파미르 고원을 향해 가는 길은 지구상 10대 ‘데스로드’ 중 하나로 여겨질 만큼 험하다. 그러나 막상 파미르 고원에 도착하면, 한여름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설산과 맑은 계곡, 산중 호수, 전 세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해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과 의회 간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고려인 동포간담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동포사회를 격려했다. 이번 방문은 우 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처음으로 떠난 해외 순방이다. 우 의장은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비롯해 마울렌 아쉼바예프 상원의장 및 예를란 코샤노프 하원의장을 만나 양국 간 무역,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도전에 함께 대응하며,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길 희망했다. 특히, 11일 알마티에서 열린 동포간담회 에서 우의장은 "고려인의 후손이 한국의 국회의장이 되었다고 보고하려고 가장 먼저 카자흐스탄에 왔습니다"면서 자신의 첫 해외순방지로 카자흐스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참석한 동포들의 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우의장은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이다. 우 의장은 이날 간담회 분위기가 무르익자 "양국 관계를 '백발백중'시키자"면서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위하여, '백발'을 선창했고, 참석자들은 '백중'을 세 차례 후창했다. 우 의장은 "이 건배사는 홍범도 장
한국에서 직선거리로 5천여 km 떨어진 카자흐스탄. 실제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감이 훨씬 더 멀게 느껴지는 국가다. 거기에서 한발 더 들어가 ‘크즐오르다’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순간 일반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크즐오르다는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줄기가 모여 아랄해를 향해 흘러가는 시르다리야강 하류에 있는 도시이다. 이곳은 북방 초원의 유목문화와 실크로드 오아시스 농경문화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유목과 농경민들 간 교역의 중심지였다. 한때 카자흐스탄의 수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 당시 원당사범대학, 고려극장, 신문사 등이 이전해 왔던 곳이다. 필자는 광복절을 며칠 앞둔 8월 중순, 홍범도 장군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청주지역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구성된 ‘홍범도의 길 탐방단’ 안내를 맡아 이곳을 방문했다. 이날, 탐방단과 함께 코르큿 아타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 학생들과 독립유공자 후손, 고려인 협회 간부 50여 명은 홍범도 장군 동상에 헌화하고 조국을 위한 그의 헌신적 삶을 돌아보았다. 단체 참배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장군의 제단 앞에 정성껏 보드카 한 잔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