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수십 년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학원(仙甘學園)에서 저질러진 반인권적 만행에 대한 진실규명·피해 회복의 매듭을 풀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법무부의 상소 포기 결정에 발맞춰 경기도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속에서 상고를 포기하고 명예회복 지원, 특별법제정 촉구 등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저지른 최악의 아동 인권침해 흑역사이자 야만적 비극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6일 SNS를 통해 “국민주권 정부가 들어서면서 선감학원 피해보상 사건에 대한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경기도도 즉각 상고를 취하한다”고 밝혔다. 도는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 사건 20건을 포함한 43건의 소송에 대해 원칙적으로 항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5일 법무부는 선감학원 국가배상 소송과 관련 “국가가 제기한 상소를 일괄 취하하고 향후 선고되는 1심 재판에서도 추가적 사실관계 확정이 필요한 사건 등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상고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인권이 침해된 국민의 권리 구제를 충실하고 신속하게 실현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현재 법원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652명이 제기한 111건, 선감학원 피해자 377명이 제기한 42건의 국가배상 소송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 3~7월 국가가 상고한 형제복지원 사건 7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려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선감학원 비극사의 시작은 1941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 총독의 지시로 섬 주민들을 섬 밖으로 강제이주시킨 후 전국에서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수백 명을 잡아들여 선감원에 가두었다. 수용된 소년들은 강제노역과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탈출을 시도한 소년들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였고, 동료 소년들이 가마니에 싸서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8.15 광복 이후 일제는 사라졌지만, 강제수용 방식은 불행하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군대식 규율과 굶주림, 강제노역은 계속됐다. 경기도가 개입된 이 같은 비극은 1982년까지 존속됐다. 강제노역, 구타, 가혹 행위, 암매장 등을 가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소년들은 무려 4700여 명에 달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를 ‘공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와 경기도에 공식 사과와 지원대책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2022년 취임 직후,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경기도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도는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월 20만 원 생활비와 위로금 500만 원(1회), 의료·심리지원(누적 1600건 이상)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담 피해자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또 지난 4월에는 안산 선감동 공동묘역 유해발굴조사를 직접 추진해 67기의 유해를 확인했고, 선감학원 옛터를 아동 인권침해의 기억과 치유를 위한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연말까지 용역을 마무리하고 다목적 전시·치유공간, 문화교류 공간, 주민 커뮤니티 시설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선감학원 문제는 경기도가 좀처럼 벗겨내지 못한 해묵은 멍에다. 식민지 시대와 권위시대를 관통하며 불운한 아이들이 모질게 인권을 유린당하고도 불명예를 뒤집어쓴 부끄러운 역사는 가능한 한 빨리 말끔하게 정리하고 치유하는 게 맞다. 피해자들에 대한 응당한 보상과 명예회복,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세우는 일에 잠시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경기도가 앞장서서 차질없이 잘 감당해나가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