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진 콘크리트 벽에 깨끗한 벽지를 바르는 순간 콘크리트 벽이라는 점을 잊게 된다. 거실이라고 하여 아파트 평수 따라 공간의 넓이도 다른데, 거실 공간의 정면 중앙에는 가족사진을 앉히고, 오른쪽으로는 지리산 일출광경의 사진을 걸었다. 왼쪽 탁자 위에는 집주인의 작품인 천 년 학이 얹혀 있다. 따라서 가족사진 아래 긴 탁자 위에는 TV가 턱 버티고 있다. 그 맞은편 의자에서 집주인은 때때로 하품을 하며 별로 볼 것도 없는 TV 화면을 보며 다이얼을 돌리다 침실로 들어가 홀로 잠을 청한다. 5월이 깊어지면 산과 들의 나뭇잎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녹색으로 건너가면 산 까치들이 제법 시끌벅적하고 운 좋은 날은 꾀꼬리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대지마을 과수원에도 가랑비는 내리고 있었다. 잠시 산책을 한답시고 서서히 걷는데 복숭아나무 과수원은 나무 아래의 풀들을 개운하게 베어냈다. 그곳엔 살찐 암탉들이 뒤뚱뒤뚱 거닐고 목과 꼬리가 긴 수탉은 붉은 몸매에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걷다가 꼬끼오! 꼬끼오! 하고 자기 영역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때 나는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무심히 잃어버린 사람과 고향에서의 삶을 반추하거나 추억을 더듬으며. 내가 나
[ 경기신문 = 황기홍 기자 ]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양력 5월 3일은 내자가 환갑을 맞는 생일이다. 황금연휴와 겹친 환갑 기념으로 애초 우리는 해외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었고, 그 속도에 맞추어 우리는 계획을 접고, 마음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통영의 절해고도의 외딴섬, 두미도. 누군가의 고향이었고, 나에게는 오래된 그리움의 이름이다. 두미도행 카페리 여객선은 하루 두 번, 단 한 척. 특히 연휴에는 선착장 앞이 마치 드라마 속 장면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새벽 4시, 터미널 문 앞에 선 우리의 그림자. 정원 제한으로 “섬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열리자마자 전력 질주. 내가 달리니 낯선 이들이 덩달아 따라 뛰어오던 그 순간, 어쩌면 우리가 정말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함께 배를 타게 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달렸느냐고 물어보니 내가 달리니 영문도 모르고 같이 막 달렸다고 한다. 섬의 옛 학교, 지금은 연수원으로 변신한 그곳 운동장 한편에 텐트를 폈다. 바다를 향해 피칭한 그 순간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성소 같았다. 하지만 여행이 늘 그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순응을 요구하지 않았다. 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