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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통신] 조선무용수 김묘수, "고려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교류하고 싶습니다"

조선학교 출신 재일동포 3세 김묘수, 차별과 정체성 이야기 전해
우슈토베 공동묘지 방문해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뿌리 조명
"춤동작을 하나씩 배울 때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의 낮 최고 기온이 거의 40도까지 올라갔던 지난 주, 4명의 방문객이 내가 일하고 있는 고려문화원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한국에서 온 영화 제작팀이었다. 자신을 조선무용수 김묘수라고 소개한 재일동포 3세가 포함된 이들은 ‘아리 아리 춤길’ 이라는 제목의 다큐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재일동포 무용수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고려인 무용수를 만나 고려인 동포 사회의 역사를 하나씩 배워가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발생 배경을 이해하고 연대 의식 키워나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했다.

 

조선무용수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기념 공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위령무를 춤으로써 재일조선인과 고려인이 하나 되는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식민과 분단의 아픔을 춤으로 치유하고 잊혀진 디아스포라들의 목소리를 일으키며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평소, 고려인 차세대들에게 민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 오던 나는 예술을 통해서 이런 고민을 풀어보고자 애쓰는 이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특히 이 다큐 영화 속 주인공인 김묘수가 구사하는 완벽한 한국어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고려인의 역사가 제대로 담기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발동되어서 고려인 마을, 우슈토베까지 안내자를 자처했다.

 

우슈토베를 향해 달려가는 편도 4시간 동안의 자동차 여정은 재일조선인 3세에게 고려인의 역사를 들려주며 동시에 김묘수라는 무용수를 통해서 재일동포사회가 받고 있는 차별과 조선학교의 생생한 현실을 듣는 시간이었다.

 

 

“춤동작을 하나씩 배울 때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김묘수는 고베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3세이다. 조선학교를 다닌 덕분에 우리 말과 글을 배웠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무용을 하는 조선학교 선배들의 모습에 반해서 조선무용 소조에 들어갔다.

 

약 64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고베 대지진 당시, 9살이던 그녀는 집을 잃고 웃음까지 잃어버린 부모님의 얼굴에서 다시 미소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자신도 조선춤을 추고 있을 때 지진의 트라우마를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가 단장으로 일했던 후쿠오카 가무단은 1966년 9월 9일 창단되었습니다. 동포들에게 우리의 노래와 춤을 보여드림으로써 동포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이 가무단이 만들어진 목적이었습니다.”

 

이 같은 조선 가무단은 예전엔 일본 각지에 많았으나 현재는 6개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 사회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듯 다음 세대들이 일본 사회 속에서 차별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춤을 통해서 동행의 메시지를 일본 사회에 던지는 것이 이제는 가무단 운영의 제1의 목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에게 보여준 사진 속 조선무용수 김묘수의 춤추는 모습은 마치 30년 전 내가 카자흐스탄에 와서 처음 보았던 고려극장 가무단원의 모습과 무척 흡사했다. 당시, 고려극장은 북한의 영향을 받아 의상과 춤사위가 우리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조선춤은 종합예술입니다. 의상도 예술이기 때문에 색과 장식 등이 춤추기 쉽고 가볍고 편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입는 의상은 평양의 안무가와 의상사와 의논을 해서 만든 것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애국심은 뜨거웠고 조국관은 확고했다. “조국의 위상이 왜곡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보도를 보면 공화국(북한을 의미함)과 한국에 대한 좋은 보도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인들이 가지게 되는 한국과 공화국에 대한 나쁜 인상을 깨트리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춤 동작 하나에서부터 의상의 작은 장식물까지도 신경 써서 조국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동포들과 일본 사회에 알려드리려고 애씁니다”라고 말했다.

 

결혼을 계기로 후쿠오카 가무단장을 그만두고 오사카로 이사를 온 그녀는 최근에 딸을 출산했다. “좀 더 있으면 딸이 유치원에 가게 되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 차별이 없어지게끔, 눈물을 흘리는 학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끔, 딸이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제 자신에게 다짐합니다.”면서 조선 춤을 계속 추는 이유를 밝혔다.

 

일본사회내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굳이 힘든 길을 가는 이유를 묻자, “솔직히 딸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딸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길을 가는 무용수로 살아가고 싶다”고 담담히 말했다.

 

김묘수는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조선적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수가 50만명에 달하는 반면,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동포들은 현재 약 2만여 명으로 급격히 줄어든 상태이다.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30여 만 명을 합해서 전체 재일동포 80여 만 명 중 약 2.95% 수준인 것이다.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일본이나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측면도 있지만 바꾸었다고 해서 일본내에서의 차별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바꿀 이유가 없어서 유지하는 동포들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 점에서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동포들은 재일동포들보다 훨씬 나은 사회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다민족사회라는 이 나라의 환경은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실례로, 카자흐스탄에서 제1부자는 카자흐인이 아니라 바로 고려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조선학교를 많이 알려주세요. 그리고 조선학교를 보러 와 주시고, 교류하는 기회를 마련해주세요”

 

그녀는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 조선학교를 돕는 길이라고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조선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과연 현명한가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모국과 재외동포사회가 함께 응원하는 것을 알면 힘이 생기고 더 즐겁게 학교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덧, 자동차는 우슈토베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루할 법한 4시간 동안의 자동차 여정이 마치 1시간처럼 지나간 듯했다.

 

김묘수는 “고려인이 사는 곳으로 달려가서 교류하고 싶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간의 교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일원임을 깨닫게 해 준다”면서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선무용수 김묘수와 고려인 무용수가 함께 펼쳐 보일 ‘아리 아리 춤 길’ 이라는 다큐 영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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