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구와 사람 ‘장산곶 북쪽에 금사사(金沙寺)가 있고, 바닷가 이십 리 거리가 모두 모래 언덕이다. 모래가 아주 잘아 금빛 같으며 햇빛에 비치어 반짝인다. 매양 바람에 따라 모래가 쌓여서 산봉우리처럼 되는데, 높아지기도 얕아지기도 하며 아침저녁으로 위치가 옮겨져서 혹 동쪽에 우뚝했다가 서쪽에 우뚝하고, 갑자기 좌우로 움직여서 일정한 방향이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 황해도편의 일부 내용이다. 대청도에서 얼마 멀지 않은 장산곶을 돌아가면 곧장 나오는 황해도 용연 몽금포 해안 일대의 사구를 표현한 글이다. 사구를 구성하는 금빛 모래알갱이, 바람이 부는 데로 쌓이는 부정형 사구의 천태만상,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만 알린 채 또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마치 사구가 조성되는 전반적 모습은 과거 대청도 옥죽동 사구를 반추해 준다. 대청도 북동쪽의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리는 옥죽동 사구.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을 구성하는 10곳 지질명소 중 하나인데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에는 ‘국내에 존재하는 해안사구 중 그 규모가 매우 큰 편에 속하는 해안사구로 현재는 방풍림 조성으로 규모가 줄었지만 예전에는 축구장 60개 규모를 자랑했다. 바
▶ 익숙했던 2~3년차 백령도 교직 생활 정신없이 첫 해를 보내고 맞이한 2년차는 개인 관사 생활을 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 전년에는 2인 1실에서 첫 객지 생활의 두려움을 동료와 함께 극복한 시기였다면, 2년차는 약간의 여유와 함께 1인 1실의 관사 사용 기회가 찾아왔다. 첫 해는 첫 해대로, 둘째 해는 둘째 해대로 좋았다. 1인 1실의 사용은 본인에게 거주 환경의 변화라 공허감도 있었을 것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관사에 ‘My sweet home’ 혹은 ‘Only my space’라는 독거 관사 생활의 참 의미를 깨닫고, 나만의 색깔 있는 공간 속에 아기자기한 소품도 갖추고 작은 가정을 꾸리듯 행복하고 만족스런 생활을 한 시기였다. 덤으로 학교 담당 부서도 별실을 사용했기에 개인 관사와 별실 근무라는 나름 호재 속에 2년째를 보냈다. 소확행이 묻어나는 시기였던 셈이다. 3년차는 어땠을까? 살짝 과장하면 백령인 수준의 적응에 다다랐고, 익숙해져 여유롭고 편했던 시기였다. 사실 학급 담임의 입장에선 ‘어떤 학생 구성원과 1년을 함께 할까?’가 제일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중고생 전체 150명 정도의 적은 인원수에 2년 동안 중고학생을 통합해
취업 빙하기,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 구직 시험은 최소 10:1 이상의 경쟁이다. 그러려니 하며 해볼 만한 경쟁률이라 생각한다. 특히 교직은 창의적 지식과 인품이 요구되는지라 1, 2차에 걸쳐 교직과 전공 능력, 수업 능력, 교직 적성에 이르기까지 테스트를 하고 있어 타 직종에 비해 매우 까다롭게 선발한다. 신규 교사가 임용되는 나이는 보통 20대 후반. 그들은 초, 중, 고, 대학교의 학창시절을 뒤로하고 임용시험에 응시했고, 지·덕·체를 겸비했기에 합격했다. 발령을 받고 첫 임용지에 근무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지만 첫 발령지가 섬, 그 중에서도 가장 먼 서해 최북단 백령도, 게다가 자취 경력도 없이 손수 지은 밥으로 민생고를 해결해야 하는 울퉁불퉁한 객지 관사 생활은 이들에게 2중고였으니 이들에게 인스턴트식품은 인류에게 선물한 최대의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쾌속선 타고 4~5시간 가야 도달하는 백령도에서 만기 3년의 과정을 마친 ‘L’교사의 경험담을 토대로 섬마을 신규 선생님의 생활기를 알아봤다. ▶ 신기했던 1년차 백령도 교직 생활 3년 전 2월 말 입도(入島)해 새 학기를 준비했다. 그 동안 대학교까지 16년 간 학교를 다니면서 피교육생의 위치에 있었지만,
1920년대 ‘대청사숙(大靑私塾)’의 숙장(塾長)과 ‘대청사립보통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김학선은 당시 대청도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1928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의 김동진 기자가 작성한 도서순례 백령도 방면 기사에 의하면 “문화정도가 향상된 대청도민들은 일찍이 이것을 염려한 바 있어 이 섬의 원로 격이오, 보통학교 교장이며, 운수회사 경영자인 김학선씨 등의 발기로 불문률(不文律)로 된 동규(洞規)가 있어서 도박을 엄금하며 옥외흡연을 금지합니다. 옥외흡연을 금지하는 까닭은 어부들이 길로 다니며 담배를 먹다가는 함부로 던지어 이전에 큰 화재가 있었음으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범하면 벌금이 일 원이오, 도민이 도박을 하면 첫 번은 주의를 시키되 두 번 이상에는 근신을 명하여 다른 사람이 그가 회개하도록 교제를 아니하는 법입니다. 술은 외지 선박이 많이 정박하는 배진포와 옥죽포에서만 팔게 하되, 도민은 절대로 영업을 못하게 하며, 외촌사람이라도 매음덕 행위를 할 사람에게는 허가를 아니합니다. 내동을 비롯하여 농사를 위주로 하는 촌락에는 술로 말미암아 어부들이 들어와서 풍속을 깨트릴 염려가 있다고 양주와 음주를 절대로 금지하여 경박부화 음탕의 침입을 엄중히 방지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16일 시내 한 전철역에서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제공 )
국민의당 인천시당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7시 부평역 앞에서 출정식을 연 뒤 시민들에게 안철수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사진 = 국민의당 인천시당 제공 )
1990년대 영종대교나 인천대교가 건설되기 전 월미도에서 영종도행 ‘용주2호’를 타고, 교사·의사·운전사 등 삼사의 역량이 요구됐던 모 학교에 재직할 당시 현관에 걸렸던 ‘君子三樂’의 글귀가 생각난다. 이것은 초대 교장 선생님께서 현관문을 드나들던 모든 이에게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육을 통해 교사의 역량을 갖추라는 시금석(試金石) 같은 가르침이었는데 20여 년이 지나 그 의미를 깨달으니 뒤늦은 자책과 평생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君子三樂’은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다. ‘교육(敎育)’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고 하며 ‘가르칠 교(敎)’ 자는 ‘회초리로 아이를 배우게 한다’이며, ‘기를 육(育)’ 자는 ‘갓 태어난 아이를 기른다’는 뜻이다. 물론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열악한 도서지역 환경에서도 100년 전부터 영재로 육성하기 위한 열정을 갖춘 곳이 있으니 바로 접적 지역인 대청도다. 대청도의 교육은 백령도, 소청도를 포함한 인근 세 섬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다. ▶ 동내동에 처음 ‘대청사숙(大靑私塾)’이 만들어지기까지 백령도에 백령
부평구경영자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동행한 분의 설명에 따르면 최부잣집의 덕과 인심이 워낙 유명해 동학, 일제시대, 6·25전쟁 등의 사회적 혼란기에도 폭도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오히려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때문인지 지금도 400년 전통의 철학을 배우고자 국내는 물론 국왕, 정부 인사, 관광객 등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250년을 유지했다 한다. 이에 견줘 무려 400여 년 동안 경주에서 명성을 이어온 최부잣집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 수 있다. 최부잣집은 병자호란 때 명장이며 공조참판과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냈던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부친 최신보(崔臣輔)로부터 최준(崔浚)에 이르기까지 13대 400여 년 간 만석꾼의 부(富)를 이어왔다. 국내 많은 유명 인사들이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1순위다. 우리 속담에 ‘작은 부자는 노력하면 되나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라는 말이 있다. ‘부불삼대(富不三代,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의 통설 속에 경주 최부잣집이 400년이나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6가지 실천 가훈이 있었
새단장을 마친 인천 제물포지하도상가가 9일 개장,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환경공단 송도자원회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장비를 이용해 일회용기 쓰레기를 쌓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일회용기 쓰레기양이 발생 이전보다 3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 사진 =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