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지만 선량함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다. (루소) 선행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다. 대가를 예상하고 이루어진 경우에도 역시 선이 아니다. 선은 인과율을 초월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횃불과 불꽃이 아무리 강력해도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지능도(설사 천재라 하더라도) 또 아름다움도, 마음으로부터의 선량함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린다. (쇼펜하우어) 한없는 부드러움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천성이자 재산이다 (존 러스킨) 연약한 식물이 단단한 흙을 뚫고 바위가 갈라진 틈을 지나 자생한다. 선량함도 그와 같다 어떠한 쐐기도, 어떠한 망치도, 어떠한 무기도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소로) 인간이 있는 곳에는 그에게 선을 행할 기회도 있다. (세네카)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우리의 마음에 든다거나 우리에게 선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모든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에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사랑,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 사랑이 가능해지는 이유이다. 위대가 무엇이 위대겠습니까? 강대국의 뒤를 따라가며 그 후진을 무릅쓰는 이른바 후진국의식을
우리 인간만이 이 세상에 정의를 이룰 수 있다. 자연의 모든 힘도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약 의식적 존재의 집합체인 인류가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할 자가 없다. (히지츠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들은 생존경쟁을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있어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단순히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회개혁자의 과제가 매우 어렵고 그 진로가 험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위대한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맨 처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상류계층의 조소와 일반 서민의 저주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이며, 사람들에게 박해받고 고통받으며, 수난의 옷을 입고 가시관을 써야 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헨리 조지) 자신은 남으로부터 분리된 존재이며, 남도 역시 각각 서로에게서 분리된 존재라는 의식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생활조건에서 나온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서로의 거리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것과의 합일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삶은 더욱 즐겁고 기쁜 것이 된다. 이 세상의 삶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에 대한 우리의 참여가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꼭 필요한 것
사랑은 때때로 위험한 말이다. 가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며, 인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사악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랑이 인간 생활에 의의를 주고 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에 의해 해답이 제시되어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답이었다. 즉, 흔히 사랑이라 불리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마치 서로 이방인이나 원수처럼 살고 있는 이 피폐하고 낡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그들은 당장 정치가들의 외교활동과 거대한 군대, 수많은 요새가 아주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은 어떻게 저런 불필요하고 사악한 것을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을 해왔을까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에머슨) 중국의 현자 가운데 맹자와 비교되는 묵자(墨子)가 있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힘과 부와 권력과 위세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존경심을 사람들에게 고취하라고 충고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신이 살고 있는 정도에 따라 신을 볼 수 있다. 17세기의 신비적인 시인 안젤루스가 말했듯 내가 신을 보는 눈은 그대로 신이 나를 보는 눈이다. (아미엘) 인간의 영혼은 곧 신의 등불이다. (탈무드) 어느 날 강 속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물속에서밖에 살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인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물고기들은 무척 놀라서, 도대체 물이 뭔지 아는 물고기가 없느냐고 서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영리한 물고기가 말했다. “바다속 공부를 많이 해서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한 마리 있는데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더군. 우리 바다로 헤엄쳐 가서 그 노인한테 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세.” 그리하여 물고기들은 지혜로운 물고기가 살고 있는 바다에 가서, 물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면 물에 대해 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혜로운 늙은 물고기가 말했다. “물이란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물을 모르는 것은, 너희들이 그 속에서 살며 그것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지.” 그와 같이 사람들도 신에 의해 살고, 신속에 살고 있으면서 신을 모르고 있다. (수피) 자신의 사상을 하늘 높이 올리는
아주 흔한, 그리고 아주 큰 불행으로 이끄는 유혹의 하나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로 표현되는 유혹이다. “낡은 옷에다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기어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쳐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예수) 우리에게 특별한 존경을 요구하는 사물을 만나면, 옷을 벗기듯 그것을 추앙하는 말들은 모두 벗겨내는 것이 좋다. 외면적인 치장은 자주 이성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가 가장 속고 있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잘못된 수치심은 악마가 즐겨 쓰는 무기이다. 악마는 그 수치심을 이용해 잘못된 교만 이상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는 잘못된 교만만으로는 그저 악을 부추길 뿐이지만, 잘못된 수치심으로는 선을 저지할 수 있다. (존 러스킨) 이 세상에 악은 없다. 악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이것을 물리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중의 속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른다. 나이 많은 사
이웃에 대한 물질적 도움보다 그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진정한 자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지지는 그의 인간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잘 먹고 잘 입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 초라한 집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난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라. (성현) 너희가 자신에게 남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것까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자신을 자비로운 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랑은 거기서 더 나가 너희의 마음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현) 비방과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이다. 올바른 재판관은 자신의 이웃을 심판하는 것과 똑같이 자기 자신도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미망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너그러운 사랑으로, 그가 올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 길을 잃은 나그네가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는 그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가?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겠는가? (세네카) 바르게 살라, 화를 내지 말라. 요구하는 자에게는 주어라. 그는 너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참으로 깨닫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나 극히 어린 시절에 일어나는 그 변화의 시작과 죽음을 동반하는 그 끝은 인간의 관찰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래도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 생명은 끊임없이 그 겉모습을 바꾼다. 사물의 겉모습밖에 보지 않는 무지몽매한 인간만이 일정한 형태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사라지면 생명 자체가 소멸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일정한 형태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애벌레가 사라지고 새롭게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 어린아이가 사라지고 대신 청년이 나타난다. 동물적인 인간이 사라지고 새롭게 정신적인 인간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류시 말로리) 도토리는 가지, 잎, 줄기, 뿌리, 즉 모든 외형, 모든 고유한 형태를 잃었지만, 그 속에 자신이 포기한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간직한 상수리나무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와 예술가가 한 마음이 되고, 나아가서는 그와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접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는 작용을 한다. 바로 거기에 개개인과 타자의 분열로부터의 해방과 고독으로부터의 해방이 있고, 바로 이러한 개개인과 타자의 융합 속에 예술의 매력과 공적이 있다. 사상적 저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 새로운 사상을 전달할 때 비로소 사상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작품도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줄 때 비로소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두 기관 중의 하나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서로의 사상을 주고받으며 또 예술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현재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람들과도 감정을 주고받는다. 지식이 점점 완성되어 가듯, 바꿔말하면, 더욱 진실하고 더욱 필요한 지식이 그릇되고 불필요한 지식을 몰아내듯, 감정에 있어서도, 예술작품에 의해 더욱 높고 더욱 뛰어나며, 인류의 복지에 더욱 필요한 감정이, 그보다 저급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몰아낸다. 바로 거기에 예술의 사명이 있다. 에
온유한 사람은 자아를 떠나 신과 하나가 된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은 없지만,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길 수는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 천하에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노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억지로 저항하는 자는 상황 쪽에서도 그에게 저항하고, 거기에 양보하는 자는 상황도 역시 그에게 양보한다. 만약 네가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 저항하지 말고 물 흐르듯 거기에 맡기는 것이 좋다. 상황을 거스르는 자는 상황의 노예가 되지만, 거기에 순응하는 자는 그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탈무드) 현자는 선을 행하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며,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결코 서운해 하지 않는다. 사디가 말했다. “나는 파르티아 지방에서 호랑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사디여, 놀라지 말라. 다만 너의 머리를 신의 멍에에서 빼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그 어떤 것도 멍에에서 너의 머리를 빼지 못할 것이다.’라고”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고자 할 때는 매우 강하지만,
오늘날 전쟁이 무익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그 해결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를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구해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슬픈 생각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지상에서 악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으며, 군대의 존재가 그 악을 얼마나 조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군대제도라는 것은 원래부터 필요 없는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 탓이며, 또 그들이 몇 사람밖에 되지 않는 교활하고 부패타락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움과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패트릭스 라로크) 이 지구상의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참으로 어리석고 생각이 얕고 둔감하여, 언론은 매일같이 가상적국에 대항해 군사동맹을 맺으려는 각국 수뇌들의 외교활동과 전쟁준비 기사로 장식되어 있고, 한편으로 국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