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즈음 한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였는데 표지의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9시를 알리는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전대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우리는 지피지기라며 책을 펼쳤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사과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아버지가 악질순사를 강에 처박고 만주로 도망갔다면서(실상은 노름빛 때문이라는데..) ‘행패를 부리는 순사 놈을 보는 소년 두환의 주먹이 불끈’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80년대 피끓는 청춘들이 완독하기에는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작가 천금성은 당시 권력핵심이자 서울대 농대 2년 선배인 허문도의 권유로 전기를 창작(?)했다. 문단의 평가는 혹독했으나 작가는 글을 판 댜가로 문화방송 편집위원이라는 달콤한 자리까지 거쳤다. 책 제목대로 경남 합천 황강변에서 태어나 서울 북악산까지 탱크를 몰고 접수했던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국민들을 자기가 통솔하던 군대의 졸로 여겼다. 오월 광주를 비롯해 수많은 청춘들이 그의 군홧발 아래 피어보지도 못하고
서울시는 내년도 TBS(교통방송)의 라디오본부 예산을 62억 5574만원에서 96.1% 삭감된 2억 4498만 원으로 깎았다. 이유는 재정자립이라지만 한마디로 라디오방송을 하지 마라는 이야기다. 알다시피 TBS는 서울시 소속 미디어재단으로 현재 여권의 스피커로 불리는 김어준 씨가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다. 예산안 96% 삭감은 이유여하를 떠나 참혹하리만치 잔인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예 죽이겠다는 이야기다. 또 서울시가 버스기사들에게 “교통방송을 절대 틀지 말 것”이란 지시를 했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심하게 치졸하다. 하나 더,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시정을 비판하는 기사를 낸 한겨레신문에 광고중단 통보를 했다. 그들은 욕망에 솔직하고 집요하다. 서울시는 예고편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사례에 익숙하다. 이명박 씨나 박근혜 씨, 같은 당이면서 불화했던 둘 사이에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언론을 장악하는데 집요하고 꼼꼼했다는 것이다. 만일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이긴다면 그 일등공신은 누구일까? 내가 보기에 TV조선, 채널A, JTBC, MBN 종편방송 4개를 허용해준 이명박정권일 것이다. 청와대 차원에서 블랙리스
1년가량 남은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화두가 몇 년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근이 부어놓은 연금은 퇴직 후 아내와 생계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늦게 본 아들딸은 아직 자립하지 못했다. 평생 시간만 나면 돈 안되는 일에 몰두하며 보낸터라 여유있는 노후는 언감생심, 마음 같아선 벌이를 계속하고 싶지만 늘그막에 정글로 뛰어든 선배들을 보니 버텨내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귀촌이었다. 애초 귀촌을 생각한 이유는 솔직히 말년에 도시빈민의 삶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도시에 머무르면 이런저런 복잡한 시절 인연들에 돈 나갈 일만 첩첩인데 알량한 수입으로 팍팍한 살림 허리펴기는 진작에 가망없는 일, 최소한 텃밭이라도 일궈 생계비라도 줄이면 버는거나 다름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 함양에 텃밭을 마련해 올해부터 매주 하루 이틀씩 머무르며 칡덩굴이 뒤덮고 있는 묵정밭을 개간하고, 농막을 짓고 농사일을 배우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뜨고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태생이 도시에서 나고자란 탓에 농사일은 일자무식이다. 그래도 한 번씩 마주치는 동네분들이 살갑게 가르침을 주셔서 이제 잡초와 작물 구분은 웬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낙연 후보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추미애 후보를 지지했었습니다. 개혁이 이루어져야 민생이 해결된다고 믿는 나로서는 검찰개혁의 선봉장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후보님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국무총리 재임 시 후보님은 진영을 떠나 한국정치의 자산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경상도 지역에서도 지지받을 수 있는 호남출신 대통령을 염원했습니다. 지역주의 척결은 결국 대통령이 골고루 배출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도 DJ를 빼곤 대부분 경상도이며, 지금 대통령 후보의 태반도 경상도 출신입니다. 이런 현실은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그래서 후보님이 총리시절의 좋은 이미지를 잘 유지해 꿈을 이루기를 바랐습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후보님 자신이나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고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임해주십시오. 더 이상 이 문제로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서는 안됩니다. 후보님 캠프에서 지금 문제시 삼고 있는 사퇴자 무효표문제는 바로 후보님이 당대표 시절 제정한 특별규정
지난 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을 청소하던 29세의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했다. 49층 꼭대기에서 내려가며 청소를 시작해 15층 높이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에게 외벽청소는 그날이 첫 출근일이었다. 처음 외벽을 타는 노동자가 외줄에 의지한 채 49층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몸을 밀어낼 때 어떤 마음일까?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밀쳐내고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의 어깨 위에는 여러 이유가 켜켜이 쌓여져 있었을 것이다. 매달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절박한 요구들이.. 신산한 일용직노동자의 삶에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사람은 내려다보기조차 살 떨리는 높이에서 그는 그렇게 매달렸고 짧았던 젊음을 마감했다. 우리는 한해 산재로 882명이 죽는 나라, 그중에 37%인 332명이 이처럼 작업 중 떨어져 세상을 떠나는 나라다(2020년 기준). 비슷한 또래의 90년생 청년 한 사람도 산재(?)를 당했다고 한다. 업무상 과부하로 어지럼증을 앓았다는데 회사는 6년 근무한 그에게 퇴직금(위로금?)으로 50억을 지불했다. 모두가 다 아는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의 이야기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대가를 받았을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 에 점령당했다는 뉴스는 말 그대로 지옥도를 보여주었다.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결국엔 미군에게 갓난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맡기는 뉴스 영상은 그야말로 무간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삶의 희망이 노루꼬리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엄마가 아기를 생면부지의 군인에게 던지지 않는다. 그 참혹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아기를 포기한 아프간의 엄마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호세이니의 소설처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떠오를까? 비극은 멀리 아프간에만 있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양의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되었다. 지금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조민 양은 앞으로 의사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도 있다. 자칫 그녀가 쌓아올린 전 생애를 부정당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조민양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처럼 삼성을 등에 업고 부당하게 승마포상기록을 내세워 이화여대에 입학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돈도 능력”이라며 세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잘못도 없었다. 빌미는 동양대 표창장이었지만 알다시피 조민의 고초는 아빠가 조국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 아빠가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 아니
고리타분한 단어 같지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도 다르고 답이 없는 관계라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정’과 ‘의리’ 하나로 버티며 위기를 넘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도한다. 여염집의 장삼이사들도 이럴진대 만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속된 말로 “의리고 나발이고”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처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리는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자기 신념과 역사에 대한 책임일진대 말이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국 전 장관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검찰개혁을 주도하다 멸문지화의 처지에 몰린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자신들은 조국사태(?)이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드높아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말이다. 또 윤석열 씨가 지지율 1위를 달리자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을 키워줬다”며 검찰개혁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에게 창을 겨누었다. 가볍기가 새털이요, 얇기가 습자지 한 장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지켜보노라면 원팀은 개뿔, 과연 이들이 한 배를 탄 사람들인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상대의 말꼬리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망
33년 전 오늘,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라는 제목의 7.7선언을 발표했다. 7·7선언은 적대적인 냉전체제에 기반해 있던 통일외교정책의 근간을 북한 및 사회주의권을 대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6개 항의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 선언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은 혼돈스러웠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도 대통령선거가 군부의 집권연장으로 귀결되자 길거리는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청년학생들은 '6·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강행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88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한민국은 중무장한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시민들이 쫓기는 군화발과 지랄탄의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언은 자뭇 생뚱맞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 전환의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 그때 길거리를 뒤덮었던 ‘자유’와 ‘민주’, ‘통일’을 열망하는 외침들은 3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7·7선언의 요체가 된 남북교류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80년대의 열망은 진작에 완성되었다. 누구도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모
지난 21일 조선일보는 “[단독]‘먼저 씻으세요’ 성매매 유인해 지갑 털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국 전장관의 딸이 통화하는 사진을 삽화로 만들어 넣었다. 그림에는 백팩을 메고 있는 조국 전장관의 뒷모습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특정 성매매 범죄기사에 전혀 상관없는 부녀의 이미지를 난데없이 끼워넣어 마치 이 부녀가 이런 파렴치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양 상징조작을 한 것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만치 불순하고 악랄했다. 조선일보가 조국 전장관의 가족에게 얼마나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졌으면 이런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할 수 있었을까? 일베가 노무현 전대통령의 이미지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듯이 똑같은 행태의 이런 언론이 버젓이 주류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 언론은 과연 어디까지가 막장의 끝일까? 대한민국 언론을 이야기하면서 왜곡과 편파, 불공정을 빼면 얘기가 되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세계 주요국가 중에서 언론신뢰도 꼴찌를 도맡아 놓은지는 오래다. 반면에 언론종사자가 느끼는 언론자유도는 역대 최고로 높다. 무제한의 자유를 주니 ‘아니면 말고’식의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린 꼴이다. 이 결과 주요매체의 뉴스불신도는 1위 조선일보를 필두로 그 뒤를 TV조선,
기억이 미래를 만든다. 우리가 지난 일을 되새기는 이유이다. 6월 6일, 66회 현충일이 지났다. 정의는 망각 위에 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6월 6일이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1949년 6월 6일, 한 무리의 경찰이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활동 중이던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장해제시켰다. 일제 때 친일의 첨병이던 경찰이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짓밟은 날, 이후 특위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일제 때 악질고문경찰로 악명높았던 김덕기, 노덕술 등은 풀려나 경찰 보안책임자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20일 후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되고, 이어지는 극우 백색테러가 꼬리를 물면서 일제청산활동은 좌초하고 공공연히 친일파가 득세하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나는 6월 6일을 우리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날로 기억한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자 대한민국은 근대 이후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에서 독립을 이루고도 단 한명의 부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희귀한 경우로 남았다. 친일을 하면 출세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추악한 가치관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겨우 4년 동안 나찌에 지배당한 것을 기화로 무려 12만명 이상을 재판에 회부하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