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느새 만추에 접어들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 야트막한 흙돌담을 걷는다. 그리고 흙돌담 너머 저만치 장독대가 보인다. 나란히 줄 세워 앉혀 놓은 항아리마다 시간이 익어간다. 뜨락에 항아리가 놓인 것을 보면 왜 그런지 마음이 고향 집에 있는 듯하다. 어릴 적에 보았던 어머니의 장독대는 뒤란에 있었다. 큰 배불뚝이 소금 항아리에서부터 조그맣고 예쁜 항아리까지 반질반질했다, 얼마나 닦고 관리를 잘했으면 그토록 윤기가 났는지 항상 정갈한 장독대였다. 가을에 콩을 수확해 타작을 하고, 가마솥에 콩이 뭉근하게 익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익은 콩을 꺼내 큰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들고 집안에서 냄새나게 띄워 겨울을 보냈다. 음력 정월이면 장을 담그고 갈무리하여 숙성하면 깊고 맛있는 간장과 된장이 되었다. 고추장은 해마다 담그는데 김장 다 해놓고 가을 끝에 했다. 나는 어떻게 살다 보니 한 집에서만 26년을 살았다. 그저 교통 좋고 호수와 공원이 있고, 광교산 등산하기가 좋았다. 파장 시장(작년부터 북수원 시장으로 명칭 바뀜)도 가깝고 대형 마트, 병원, 학교 등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처음에는 장을…
직장인들에게 가장 핫 트렌드중 하나는 워라밸이다.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의미한다.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중요시 되기도 한다. 일 뿐 아니라 삶의 질도 중요시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워라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일에 지친 직장인들의 힐링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등산, 자전거, 낚시 동호회 등 자신만의 취미 활동으로 힐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 지고 있다. 음악이 좋아 모인 ‘뮤렉스’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다. 뮤렉스는 자신들만의 연주 공간이 아닌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그 공간의 이름은 ‘마실’이다. 뮤렉스는 올해 6년차 남녀 혼성 직장인 밴드다. 현재 안성에서 활동하고 있다. 멤버는 총 7명으로 은행권에서 일하거나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 전기기술자, 학원원장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모임 합주실을 별도로 마련,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 또 이 공간에서 지인들을 초청, 자그마한 정기 공연도 연다. 지난달에는 안성 바우덕이 축제 때 오프닝 공연에 초청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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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공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소위 특성화고등학교 입학생은 성적이 낮아 인문계 진학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다수를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이제는 특성화고에 떨어지면 인문계를 가야 한다. 수원 팔달구 매향동에 위치한 삼일공업고등학교가 지난 10월 개최한 입시설명회에는 500명이 넘는 학부모와 학생이 참여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특히 내년에 신설되는 3D융학콘텐트과와 경찰사무행정과에 높은 관심이 집중됐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였던 임연수 선생을 중심으로 1903년 설립돼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삼일공고를 찾았다. 1903년 임연수 선생 중심 설립 1968년 화학공업과 설치로 전문인력 육성학교 자리매김 지역 곳곳서 동문들 활약으로 특성화고교 인식도 개선 한몫 2010년 발명특허 특성화고 지정 2016년 경기도 혁신학교로 선정 경찰사무행정·3D융합콘텐츠과 내년에 국내 고교 최초로 신설 이후 레저스포츠과 등 설치예정 정조의 효 정신 바탕에 인성교육 선배도 후배에 “꿈 가져라” 당부 일제시대 교회 유지였던 이하영, 임연수, 나중석 씨가 주축이 돼 설립한 삼일학교를 시작으로 발걸음을 시작한 삼일실고는 1968…
경기도가 골목상권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최근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골목상권이 점점더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달부터 시장상권영향분석시스템을 운영하고 도지사 공약사항인 ‘지역 상권 활성화’를 본격 추진할 예정이라니 기대 또한 크다. 사실 대기업의 상권 잠식이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골목을 무대로 소상공업을 통해 먹고살던 서민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구멍가게는 모두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음식점들도 이제는 프랜차이즈 깃발을 걸지 않을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대형 상권은 물론 골목상권까지 공룡 대기업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떡볶이, 순대를 파는 프랜차이즈 형태까지 생겨나 동네 점포들을 위협하고 있고, 김밥집이나 라면집도 단독 점포 운영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수년 안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모든 점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정부가 그 동안 골목상권 수호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중단할 수는 없다. 서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골목상권…
약 2개월 전 휴가를 나온 병사 윤창호 씨가 부산 해운대 한 건널목 인도에 서 있다가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에 치어 의식불명이 됐다 그리고 9일 끝내 사망했다. 고인이 명복을 빌며 유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원칙을 지키는 법조인’이 꿈이었다는 그는 제대를 불과 4개월 남겨 놓은 채 ‘원칙을 지키지 않은 음주운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그의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처벌 강화 청원을 올렸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청원인은 “제 친구들은 만취해 운전대를 잡은 인간 하나 때문에 한 명은 죽음의 문 앞에, 한 명은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며 “하체가 으스러진 고통 속에서도 현역 군인 윤 씨의 친구 C는 친구가 피범벅이 돼 간질 환자처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기어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해자 측과 동승자 모두 아직까지 사과조차 하러 오지 않고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은 상태”라고 분개했다. 이 청원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청원이 시작된 10월2일부터 마감된 11월1
“관점을 바꾸고, 틀을 깨고 나와서 틀 밖에서 바라보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부분에 관심 가져야 한다.” ‘관점 디자이너’로 알려진 박용후 씨의 외침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번역 오류부터 살펴보자. 인문학은 영어로 휴머니티스(Humanities)다. ‘후마니타스’라는 경희대학교의 인문학 양성과정이 있는데, 휴머니티스는 인간적인 특성의 이상을 실천하려는 실천적 교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은 인간적인 특성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배경이 되는 기술 관련 연구가 바탕에 깔려있다. 서강대의 아트&테크놀로지 학과나 전국의 과기대와 대전에 있는 CT센터에 더 가깝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로 번역되는데, ‘인간적 자유를 향한 진보적인 삶의 예술’로 해석 가능하다. 줄여서 자유로움의 기술이다. 이는 기계를 생명체로 보는 애니미즘적인 철학을 가졌던 인공지능의 아버지 ‘마빈 민스…
4차 산업혁명이 화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의 약진으로 우리 생활은 풍요롭게 변한다는 전망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이에 따라 수십 년 내 현재 직업이 과반수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맞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계도 세계적인 추세인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계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담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량 교육 강화가 그것이다. 교육은 현재보다 미래 세대 학생들이 변화된 세상과 삶의 방식에 대비한 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미래 시대에 맞는 다양한 역량 등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학교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학습 개념과 지도 원리, 수업 방법과 평가 방식 등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 등은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역량 교육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이찬승의 지적대로 ‘지식과 역량을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에만 머물고 이의
감귤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8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과 스페인 일본 연구진이 세계 감귤류 60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히말라야 남동쪽인 인도 북동부와 미얀마 북부, 중국 남동부가 원산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후 감귤은 서양으로 건너가 ‘만다린(mandarin)’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학자들은 비슷한 명칭인 탠저린(tangerin)을 포함해 감귤, 오렌지, 자몽 등 즙이 풍부한 과일을 ‘시트러스(citrus)’라고 통칭한다. ‘남쪽의 귤이 북쪽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뜻의 귤화위지(橘化爲枳) 또는 남귤북지(南橘北枳) 등의 고사에서 보듯 감귤은 산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 과일이다. 아열대 기후인 제주에선 조선시대에도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제대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귤은 바나나와 함께 고급과일에 속했다. 80년대 감귤이 계속 증산되고 맛까지 좋아지면서 ‘국민 과일’이 됐다. 비타민C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는 지금의 제주 감귤 품종은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귤’이다. 원산지가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라는 의미다. 맛과 향도 일본으로 역수출 할 정도로 좋아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운 단풍잎을 떨구는 나무는 모든 것을 땅으로 돌려주고 앙상한 몰골로 남아 겨울을 준비한다. 식물들이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월동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쌀 한 가마와 연탄 오백 장을 재어 놓으면 든든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전화만 하면 배달해 주는 난방유나 도시가스가 있어 연료 걱정은 별로 안 하고 산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주어진 김장은 김장증후군이라는 말을 낳기도 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 때도 겨울의 문턱이었다. 살얼음 같던 나날이 이어지던 시집살이의 시작이 된 때가 바로 첫눈이 올 무렵이었다. 한 번은 교대역에서 전철을 타야 하는데 역까지 택시를 탔다. 내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신 택시 기사님께서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네온이 빛나는 골목길에 빨간 불빛으로 무슨 장이니 모텔이니 하는 간판으로 가득한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문고리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얼마나 손에 힘을 주었던지 나중에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였다. 결혼을 하면서도 늦은 나이라 집안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이제 급하니까 막차 탔다고 놀리기도 하고 막차를 보내면 택시가 온다는 농담으로 사또를 멋쩍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 후에도 막차는 언제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