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에서 /고형렬 그곳으로 가려면 우리는 꽃눈에서 떨어져야 한다 별처럼 아프게 우리는 우리가 있었던 그 자리에 열매를 남겼다 아주 먼 곳에 그 열매들이 우리를 기억하려 애를 쓴다 기억이 잘 되지 않는다 그곳을 알 수 없다, 말하면서 그치만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상처를 가져오고 싶어도 가져 올 수 없다 -문학마을 여름호 중에서 시인은 지금 나무의 구성 요소인 가지를 논하고 있으며 가지에서 그곳을 지향하고 있다. 그곳이라 함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미래의 한 지점을 말하고 있다. 아울러 시인이 앞으로 가야 할 새로운 세계일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꽃이 떨어진 자리는 열매가 맺히게 되며 그것은 어쩌면 사랑과 삶의 흔적인 것이다. 열매의 상징성은 후손을 가리키겠지만, 이것은 분명, 삶의 흔적이며 결과물일 수 있다. 열매는 떨어진 꽃잎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곳’으로 가려면 삶의 터전인 ‘꽃눈’의 자리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별처럼 아프게’ 떨어지면서 열매를 남기고 흔적 없이 떠나야 한다. 따라서 큰 성공을 위해서는 이별의 아픔도 감내해야 한다. /정겸 시인
지난 21일 벌어진 제천 목욕탕 참사의 원인은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었다. 특히 소방차 진입을 방해한 불법 주·정차와 사람들이 탈출해야 하는 비상구를 막은 것이 대형 인명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소방대는 첫 신고 7분 뒤인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 건물 주변 도로의 불법 주·정차 차량들 때문에 화재 현장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해 죽어가고 있는 상황, 1초가 다급했던 그 시간을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치우는데 허비해야 했다. 미국은 화재 시 긴급 견인에 따른 차량 훼손은 보상 책임이 없다. 영국은 ‘화재와 구출 서비스법’이 있어 소방관이 화재 진압과 구조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재량에 따라 차량 소유주의 동의 없이 차를 옮기거나 부숴도 된다. 우리나라도 소방기본법엔 화재 진압 시 불법 주차 차량을 제거 또는 이동시키고 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차량을 손상하게 되면 소송을 당하는 등 복잡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으로 불법주차 차량을 치우지 못한다. 오죽하면 27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추미애 대표가 “촌각을 다툴 때는 불법주차 차량을 부수고 화재 진압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1만 명 중 3천여 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하는 등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냈다. 7개월 간의 진통 끝에 이뤄낸 일이어서 일단은 평가받을 만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잇따라 선언하고도 아직 진행이 지지부진한 기관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사는 26일 정일영 사장과 협력사 소속 노조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전환대상과 방식, 채용, 처우 등을 포함한 ‘정규직 전환 방안 합의문’에 서명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전체 1만명 중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분야를 담당하는 소방대와 보안검색 관련 업무자 3천여 명이며 나머지 공항운영분야 및 시설·시스템 관리 분야 7천여 명은 지난 9월 설립된 임시 자회사인 인천공항운영관리㈜ 정규직으로 편제된다. 정규직 전환 시기는 협력사와의 계약해지가 필요함에 따라 올 연말까지 계약이 만료되는 11개 용역, 1천4명은 내년 1월부로 전환되며 계약해지 마무리 단계에 있는 4개 용역, 825명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는 내년 1분기까지 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다. 계약해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5천여 명의 비정규직도 협력사 계약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자회사
지휘봉을 놓치다 /김연성 하루하루 흘러간다 저녁은 또 잘도 온다 흔들리는 것에도 이젠 익숙하다 눈에는 장미의 가시 가슴에는 잿빛 석양 흉곽을 뚫고 지나가는 패배감도 이젠 정겹다 내가 언제 무엇 하나 지시한 적 있었던가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누구에게 명령한 적 있었던가 잡지도 못한 지휘봉, 자꾸 마음 끝에서 미끄러진다 형체 없는 치욕이 내 안에 떠다니고 있다 생의 지휘봉을 놓쳤다 나는, 벌써! - 시집 ‘발령났다’ 시인은 자기 몫의 생을 살아가지만 그 생을 들추는 이, 또는 예견하며 아파하는 이,라 해야 하나? 우리는 주어진 삶을 그냥 터벅터벅 걸을 수밖에 없는 나그네인가? 엊그제 봄인가 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깊고 있다.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흘러간 날들이여. 눈 뜬 아침인가 하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마는 하루하루여. 그러다 보니 눈에는 장미 가시가, 가슴에는 잿빛 석양이 깃들어 있는 이런 패배감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일 것이다. 다만 시인은 떠밀려 가는 삶의 물살에서 간과한 자기 성찰의 요소를 재빨리 캐치한 것이다. 여기서 지휘봉은 주체적 삶을 살아내지 못한 회한의 매개체일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때로는 자식으로서의…
1년이면 한두 차례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우들을 만난다. 이번 주말 그들과의 송년회가 기다려진다. 1982년 제대했으니 37년째 이어져오는 끈질긴 만남이다. 남자들 셋만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지만 남자들도 만만찮다. 혹자들은 제대하고 나면 부대 쪽을 향해 XX도 안 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래도 군대 얘기가 나오면 신이 난다. 자신들이 가장 고생한 것인 양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당시 동료 전우들은 물론 소대장 선임하사(행정보급관)에 국방장관을 지내신 중대장까지 수십 명이 모인다. 50대 후반에서 60이 훌쩍 넘은 나이들이다. 1979년 군에 입대했을 때는 전쟁만 치르지 않았지 정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했고, 전두환 장군의 12.12 군사쿠데타에, 광주민중항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됐던 시절이었다. 실전상황인 준전시상태의 비상이 발령됐으니 그 시절 군에서 지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분주했다. 지금은 어디에다 버렸는지 모를 ‘국난극복기장’이라는 마치 훈장처럼 생긴 흉장을 달고 휴가를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북을 향해야 할…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의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수원광교에서도 또 화재가 발생했다. 성탄절인 25일 오후 2시40분쯤 광교신도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쳐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날 화재현장 인근에는 대형 쇼핑몰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어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그러나 경기도재난안전본부의 신속하고도 현명한 대응으로 그나마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남 수원소방서장 등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즉각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헬기와 함께 인근 용인 화성 오산 송탄 등 10개 소방관서에 장비와 인력을 투입토록 했다는 것이다. 이날 화재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후 2시46분이었는데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불과 4분만인 2시50분. 즉각 인근 소방서에까지 신속한 출동을 요청해 장비 59대와 138명의 소방인력이 투입됐다. 화재진압 경험이 많은 인근의 베테랑 소방관들은 인명구조작업은 물론 인화성 물질이 있는 곳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소방력을 집중해 2시간 반만에 불길을 잡았다. 제천 화재 발생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한 1차 투입 인력은 모두 13명으로 초동대
‘궁(窮)하면 통(通)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궁했기 때문에 통할 거라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지혜의 변수’를 가하라는 뜻일 게다. 때문에 ‘궁즉통’이 아니라 ‘궁즉변 변즉통(窮卽變 變卽通)’이 올바른 표현같다. 44일 후에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은 그 동안 바로 이 ‘변(變)’자가 화두였을 것이며, 올림픽 이후에도 여전히 지혜와 순발력의 변수가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당시 92%에 이르는 국민이 지지와 환호를 보냈는데도 준비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설상가상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탓에 행사 개최는 물론 참가 자체에 우려를 표하는 국가들이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지금은 행사를 위한 준비평가도 흡족한 수준이며 기금 조성도 목표치를 넘었다고 하니 그동안 조직위원회가 ‘변의 지혜’를 제대로 발휘한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후가 더욱 걱정스럽다. 통상 올림픽 유치를 두고 경제적 효과를 수치로 환산한다. 조직위는 총 13조 원 정도
‘안 먹을 음식은 먹기 전에 미리 돌려주자’는 캠페인 광고를 봤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다. 특히 요즘처럼 송년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이 잦는 때에는 꼭 필요한 정보이고 실천해야할 사항이다. 한정식이나 상차림의 가짓수에 신경을 쓰는 업소를 보면 비슷비슷한 반찬과 절임류와 나물 등 수십여 가지의 찬으로 큰 상이 가득하다. 가짓수가 많아 먹기도 버겁고 필요이상으로 많이 나오는 염장식품은 부담스러워 손이 덜 가게 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본인이 먹지 않는 음식은 되돌려 보냄으로 자원낭비도 막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합리적인 방법인가. 음식점에서 수저도 안댄 반찬을 볼 때 버려지는 것이 아깝기는 했지만 먹기 전에 되돌려 준다는 생각은 못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족끼리의 식사자리에는 음식의 호불호를 알기 때문에 가족의 식성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은 추가하고 먹지 않는 음식은 미리 돌려보냄으로써 맛있게 부담 없이 식사를 하면서 남기는 음식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한 휴게소 자율식당에는 반찬마다 가격이 있어서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만 선택해 먹을 수 있어 좋다. 한식과 양식 등 메뉴를 골고루 갖추고
12월 26일, 이 날의 시계를 38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979년 이 날, 북한은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참가의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대화를 대한체육회에 제의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에 북한의 참가에 대해 현명한 선택의 결정을 하도록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케이티엑스(KTX) 경강선’ 시승식의 대통령 전용열차(트레인1) 간담회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바란다고 표명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도 취임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건 없는 남북대화의 개최를 제안하고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한 기대를 표시해오고 있다. 이런 기대는 우리 정부의 인내심과 기다림이라는 선택의 시간적 흐름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에서 체육회담은 그 어느 분야의 회담보다도 먼저 시작됐다. 특히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체육회담의 물꼬는 ‘올림픽’의 단일팀 출전문제로 비롯됐다. 그 출발점은 ‘도쿄 하계올림픽’의 남북단일팀 출전여부를 두고 1963년 1월과 5월의 남북체육회담이 로잔 및 홍콩에서
주소를 지우다 -치매행致梅行·11- /홍해리 소식을 보내도 열리지 않는 주소 아내의 이메일을 지웁니다 첫눈은 언제나 신선했습니다 처음 주소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눈이 사로잡은 아내의 처녀 아직도 여운처럼 가슴에 애련哀憐합니다 이제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내 사랑입니다 열어보고 또 열어봐도 언제부턴지 받지 않는 편지를 쓰는 내 마음에 멍이 듭니다. - 홍해리 시집‘치매행致梅行’ / 황금마루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로 시작되는 시인의 「다 저녁때-치매행·1」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집에서는 세 아이와 여간 까다롭지 않은 시인님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수행하시던 현모양처”(임채우 시인의 발문 中)라는 시인의 아내. 어느 날 “집사람이 명사를 기억하지 못해”라는 시인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치매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겪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첫눈에 내 삶의 모든 것을 같이 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