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온 노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한자가 ‘화’를 의미하는 노(怒)다. 종을 이르는 노(奴)와 마음(心)이 합쳐졌으니 분(忿·성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화내는 것’을 다른 말로 분노(憤怒·忿怒)라고도 하는 이유다. 우리는 어떤 일이 옳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 표출은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는 매우 정당한 행위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한 이후에 감정적으로 후련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분노, 즉 화는, 참기보다는 분출시키 거나 푸는것이 좋다. 큰 소리로 항의하거나 법적 소송을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그렇치 않으면 우울증의 일종인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으로 이어진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듯하며, 뛰쳐나가고 싶고, 뜨거운 뭉치가 뱃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증세와 함께 불안, 절망, 우울, 분노가 일어난다는 화병. 한국인에게 특히 많은 질병이다. 1983년 미 캘리포니아대학 의료원의 한 정신과 의사가 그곳 한국인 교포 여성 중 자신이 화병에 걸렸다고 믿는 3명의 환자를 치료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화병이 한국의 문화연계증
얼음물고기 /김명서 별 입자가 구름 입자와 충돌할 때 난반사된 불꽃들이 결합해서 잉태된 나는 순수한 원자만의 집합체이다 대양으로 나가는 안전한 바닷길은 해일에 가려져 있다 위험할수록 이성은 차갑게 빛나는 법 살아남을 수 있다 각오를 해저 동굴의 암벽에 저장해 두고 몸통을 세차게 흔들어 조류의 흐름을 살핀다 저온의 해수가 체온을 앗아간다 낙조에 물들어가는 몸에 얼음꽃 핀다 - 김명서 시집 ‘야만의 사육제’ 내가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왜 태어났는가. 특히 삶이 힘들 때 이러한 물음을 묻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별 입자가 구름 입자와 충돌할 때 난반사 된 불꽃들이 결합하여 잉태되고 태어난 물고기다. 그러나 대양으로 나가는 안전한 바닷길은 해일에 가려져 있다. 그렇게 앞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은 때로 나를 낙조에 물들게 하는 저온의 해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의 이성은 차갑게 빛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각오를 저 깊은 해저 동굴 암벽에 저장하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조류의 흐름을 살피는 전신에는 얼음꽃이 핀다. 나를 냉철하게 다잡는 이러한 몸부림은 사람과 사람 사이 발생하는 피로감
언제까지 이런 건가. 대통령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도 답답하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는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검찰수사가 대통령 측근과 비선실세들에게 집중되면서 비리는 고구마줄기처럼 연일 터져나온다. 태블릿PC와 동영상 등을 확보한 언론들도 마치 곶감 빼먹듯이 하나하나씩 꺼내며 국민적 의혹을 증폭시킨다. 이를 본 국민들은 혀를 차며 오늘은 또 뭐가 나올까 기대에 차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수십만 명의 주말 촛불시위와 함성은 전국을 강타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가뜩이나 얼어붙은 정국이 올스톱 상태다. 야권은 국무총리를 추천해달라며 국회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걸 다 내려놓으라 한다. 새누리당도 비박계 의원들은 중심으로 대통령의 하야 및 탈당까지 거론하며 분당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야권의 요구대로 이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적을 버리고 2선 후퇴로 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던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도 해야할 판이다. 수사를 받고 있는 측근들의 진술 내용 중에는 대통령의 개입 정황이 짙기에 더욱 그런 상황이다. 대통
12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대회에는 무려 100만명(주최측 추산)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전국에서 모인 국민들의 함성을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도 들었을 것이다. 시위대의 구호는 주로 박근혜 하야였는데 곳곳에서 국사교서서 국정화 반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퇴진위기에 몰린 현 정권이 이 난국에 밀어 붙이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았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이 협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일간 정보협력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협정문안은 이미 지난 2012년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밀실’ 논란 끝에 무산된 바 있는데 이번에 또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결정은 이번에도 야권의 거센 반발과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야3당은 협상 중단을 당론으로 채택한 데 이어 협상을 지속할 경우 한민구 국방장관 해임을 건의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협정을 반드시 체결하겠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권 잠룡으로 떠오른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가 추진
지난 미국 대선에서 모든 여론조사기관은 ‘힐러리’가 당선된다고 했다. 하지만 오직 SNS를 파악한 인공지능만이 ‘트럼프’의 당선을 우세한 주(州)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빅데이터 파악력과 분석력을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것이다. 이번에 여론조사가 틀리는 ‘브래들리 효과’를 내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는 4년 전 한국 대선에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유와 비슷하다. 미국은 몰락한 중산층들이 화풀이 할 대상을 찾고 있었고 대다수는 전 세계가 불황이어서 닥친 상황까지도 누군가의 실책이라는 탓을 하고 싶어했다. 미국 대선에서 예상 외로 트럼프를 적극 지지한 ‘러스트 밸트’ 지역은 클린턴이 지지한 NAFTA의 여파로 직장을 잃거나 폐허가 된 상황이었다. 그런 점을 잘 알았던 트럼프는 일단 보호무역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이전 정부가 미국을 약하게 했다는 소리로 해석된다. 세계적 불황으로 소득 감소와 실직위기로 불만이 많던 민주당 지지 노동자 세력들을 트럼프의 두 선언으로 클린턴과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나날 속에서 관심 밖의 일일 수도 있지만 오는 17일(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응시생 60만 5988명과 그 가족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할까. 어김없이 특별대책이 발표되었다. 관공서 출근시각이 늦춰진다. 전철 러시아워 운행시간도 연장되고 횟수도 늘어난다. 시내버스도 집중 배치되고 시험장 안내도 해준다. 개인택시 부제 운행도 해제된다. 행정기관들도 비상 수송 등 편의를 제공한다. 전국 1천183개 시험장 주변은 차량 출입이 통제되고, 영어 듣기평가를 위해 항공기 이착륙 시각이 조정되며, 각종 소음 유발을 자제해야 한다. 이것들은 권장사항이 아니다. 교육부에서는 ‘국민적 협조’를 당부했다. 문제는 우리의 시각(視覺)이다. 익숙해서 당연한 일 같지만 예삿일이 아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시험의 중압감이 나쁘다는 걸 확인하려면 잠시 한국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면서 한국에서는 수능시험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결혼 등 일생을 좌우하는 관문으로서 일시에 수십만 명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가령 전국이 ‘침묵상태(hush mode)’가
촛불은 자신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춘다는 점에서 희생을 의미 한다, 또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새벽과 광명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기원을 의미한다. 특히 밝음을 주면서도 자신은 정작 불사르는 희생정신 때문에 경건함과 엄숙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촛불이 종교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독교에선 촛불이 세상의 빛인 예수를 상징한다. 천주교에서 부활절이나 성탄절 때 촛불을 밝히고 미사를 드리거나 행진을 하는 풍습도 여기서 기인한다. 불교에서도 촛불은 끊임없는 우러름과 정성, 부처님에 대한 찬탄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해서 중요히 쓰이고 있다. 생일을 축하하며 촛불을 켜는 것은 생명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중세 독일 농촌에서 어린이를 위한 생일축하행사 ‘킨데 페스테’에서 유래됐지만 의미는 생명의 탄생, 그리고 삶의 소망과 무관치 않다고 해서다. 당시엔 생일을 맞은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촛불로 장식된 케익을 아이 앞에 내놓았고, 저녁시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을 때까지 불을 끄지 않을 정도로 촛불의 의미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촛불이 집회에 등장한 것은 1968년 미국에서다. 마틴 루서 킹 목사 등 베트남 반전시위 운동가들이 의회 앞에서 시
환유의 골목 /김영 혼자 구르다 멈춘 깡통은 버려진 악기처럼 운다 이전 골목에서도 그런 적 있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마를 부딪친 적 있다 여닫는 각도가 비례하지 않았다 비오기 하루 전 수천 개의 가로등 뒤로 말문이 트이지 않은 불균형이 꿈틀거린다 굴러다니며 비를 맞는 깡통 더 이상은 울지 않는다 평소에 친했던 사람과 사소한 일로 서먹하게 돌아서는 날이 있다.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른 만큼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의 각도가 맞지 않기도 할 것이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밤길, 화자는 가로등에 기대어 미처 건네지 못한 말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제일 멀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필자는 2016년 11월5일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백발의 노부부, 동료로 보이는 중년의 회사원들, 5~6세로 보이는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 대학생들, 그리고 고등학생, 중학생… 등 20만명의 국민들이 광화문 광장과 그 일대를 꽉 채웠다. 차도와 인도에서 한목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박근혜는”이라고 선창하면 어디선가 “퇴진하라”고 화답을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정이 거의 마비상태이다. 대통령이 최태민 일가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최순실이 추천한 인물들을 등용해 최순실의 국정개입 농단을 야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군주의 마음이 사와 정의 구분여하에 따라 정치가 순수하게도 되고 잡박하게도 된다.”는 400년 전 조광조의 말이 필자의 가슴에 다가온다. 춘추시대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인물은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法之不行自上犯也)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고, 의와 이를 구별하지 않으며,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였고, 대통
깊은 어둠과 고요 속에서 사물은 스스로 제 모습을 갖추곤 한다. 한 덩이의 바위 안에서 여인이 깨어나고 있다. 환하게 드러난 여인의 등은 구불구불 흐르고 있고 조명을 받아 음영이 드리어진 굴곡진 면들은 여린 피부 안에서 등골이 꿈틀거리고 있는 여인의 사실적인 모습을 포착하다가도, 이내 매끈하고 단단한 돌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저명한 수많은 조각가들이 그들의 손을 타기 전부터 이미 돌은 어떠한 형태를 담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디나이드’는 이들의 증언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 마냥 자연과 예술의 사이를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로댕은 그전까지 사람들이 생각했던 조각의 개념을 바꾸었던 예술가였다. 당시 회화분야에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카데미즘과 살롱전에 도전하며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다면, 조각에서는 로댕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좌대를 깎다 만 형태로 그냥 놔두는 것, 머리나 팔다리가 생략된 토르소만을 제작하는 것, 신체가 여러 마디로 분절된 것 마냥 과장되거나 기형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은 로댕 이전에는 없던 것들이다. 완전하고 매끄러운 형태의 기념비적인 조각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일 수밖에 없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