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나리 봇짐을 메고 정처 없이 글방에 스승을 찾아 나선 유생(儒生) 들의 배움의 애환(哀歡)은 사람다운 진리에로 향하는 숭엄한 인간의 길은 선조들이 쌓아온 학문의 문화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미래 학문의 세계를 위해 목숨도 개의치 않고 후손들을 위해 이룩한 교육 방향에 끼친 업적은 참으로 오늘날 까지 크게 기여해 왔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해온 교육이 오늘날 커다란 문제 덩어리처럼 인식되고 있고 또 실제로 많은 난제를 안고 있는 이유의 하나는 그 동안 교육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학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으로 고려 말기부터 설치 되었던 오늘날 학교의 원조인 지방 향교(鄕校)는 중앙의 각부(府)에 두었으며 중국에도 없던 것으로서 고려말 유학진흥의 현실적 요청에서 설치해 조선조에 와서 학교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고려제도를 답습해 한양(서울)을 동·서·중·남·북 5부로 나누고 여기에 학교를 하나씩 설치해 5부 학당(五部學堂)으로 했다. 학사(學舍:학문을 닦는 건물) 가 없어서 대부분 사원(寺院:절)을 이용했으며 국가에서 학사를 운영함으로서 각 지방에 자금 조달을 위해 학전(學田) 노비(奴婢) 잡물(雜物) 등 사급(賜給:나라에서 내려 주는 물품) 과 전라북도 연안에 있는 여러섬들의 어장(漁場)을 주어 그 세(稅) 로 비용을 충당하게 되었다.
전국에 있는 5부 학당은 교수인 훈도(訓導) 2인을 두고 성균관 직원일 까지 겸직했으며 학교의 운영권은 국가에서 부담했다. 나라에서 수업상태를 감독하기 위해 예조(禮曹)와 사헌부(司憲府) 에서 전체적인 관리 감독을 했다. 그 후 임진왜란 은 나라를 혼란과 도탄 속에 빠져 들게 되었고 학사인 절간은 왜적들에 의해 불타 버렸으며 그 나마 공부 할 자리를 잃어 학생수는 급격히 격감되고 사실상 폐교 되었다.
조선조가 저물어 가는 한말(韓末)에 관청에서는 학교 건축이 어려 울 때 외국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세워지게 된 사학(私學) 은 개인이 처음 설립한 교육기관이며 사학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학교 이름을 붙인 것이 남자학교 배제학당(培材學堂)과 여자학교 이화학당(梨花學堂)이 되었으며 그 후 학당이 학교(學校) 로 개칭 되었다.
옛날 사학은 교육 인재육성으로 어려움 속에서 때 묻지 않고 유리알 같이 학교장이 중심이 되어 선생님들을 하늘같이 공경하며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었다. 그때는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치경제 사업 종교에서 사학재단이 설립되면서 급속도로 사학이 늘어 학교는 정치의 장이 되고 사업의 장이 되어 이권이 개입되는 불신의 장이 되었다. 사학은 족벌체제의 반대에 서 있는 전교조와 그 외의 갈등은 국회로 넘어가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이 추운 겨울에 정치권은 뜨거운 감자로 비유(比喩)되고 있다.
학교사업이 얼마나 돈 벌이가 되는 줄 몰라도 내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제대로 된 교육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사람을 깨끗이 만든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 까지 두고 가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욕심을 놓아 버리고 맑은 정신으로 후손을 위해 선진교육에 힘써야 한다. 대신 우리는 후손들에게 역사에 업적을 남길 이름 석자는 남겨놓고 가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1천600여 사립 초·중·고 가운데 사학측의 사유재산이라 할 수 있는 법인 전입금(轉入金) 비율은 2% 미만인 학교가 85% 넘는다는 것을 보아도 사학이 장악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학법인이 학교를 설립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사학이 법정 분담금 조차 납부하지 못하는 등 국고보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사학의 문제에 대해서 자율성 보다는 공익성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
이권이 개입돼 눈치를 보고 보직에만 탐내고 특정인이 행정을 움켜쥐고 있을 때 학문은 비틀거리게 되어 있다. 학교 교육 수준이 날로 높이 변해 가는 만큼 학교운영 방침도 변해야 한다. 끼리 끼리가 아니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들이 맡아야 사학도 수준의 고급화가 되는 것이다. 학교는 누가 장악하는 것도 아니고 지배해서도 않된다. 교육은 결국 사회 계층간의 간격을 여러 세대(世代)에 걸쳐 구조적으로 심화 시켜주는 역할은 하게 된 역기능의 소지를 안고 있어야 한다.
높은 수준의 교육문화를 꽃피운다는 것은 문화민족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학문의 응용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교육의 흐름을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도약해야 한다.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교육으로서 문화민족의 인류와 세계를 향한 징검다리 역할도 형성시켜 주는 것은 오직 진실 속에서 꾸준한 학문의 세계를 연구해 미래를 개척하고 주도해 나가야 선진국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뚜렷이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