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행사에 대한 상장을 뽑을 일이 있었다.
교실 프린터로 뽑으려니 두꺼운 상장 용지가 자꾸 걸려 뽑을 수가 없었다. 교무실 프린터기는 토너가 부족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2학년 4반의 프린터로 뽑을 수 있겠다 싶었다. 토요일에 시상을 해야 되는 터라 급히 2학년 선생님께 양해를 얻어 2학년 교실로 갔다.
교실에는 미처 하교 못한 2학년 조무래기들이 고물고물 놀고 있었다. 이 놈들이 낯선 선생님의 방문에 신기한 듯 병아리처럼 주위로 모인다.
“선생님, 8단지 사시지요.”
한 녀석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묻는다. 짐짓 녀석의 질문 의도가 헤아려져서 대답에 뜸을 들인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 지구 안에 있는 학교다. 그러다보니 우리 아이들은 7단지, 8단지,9단지... 그야말로 단지 속의 아이들인 셈이다. 어찌 보면 <단지 속 아이들>이란 표현이 동화스럽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리 동화스럽지 만은 않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한 건지, 부모님들의 가정 속 대화 탓인지 아이들은 제 단지 속에서 나름의 부의 등급을 매기는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단지 내 평수가 작은 주공 아파트인 8단지 아이들은 의례 기가 죽기 마련이다.
“너, 8단지 사니?”
“예, 그런데 선생님도 8단지 사시지요? 저, 선생님 아파트에서 많이 봤어요.”
수민이가 학교와 가까운 주공 안 어린이집에 다녀서 아침. 저녁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녀석이 내가 거기서 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안달이 나서 대답을 재촉한다.
생각 같아서는 녀석의 안달에 답하듯 그 곳에 산다고 해야 되겠는데, 쩝.
“너, 선생님을 봤구나. 야, 대단하네. 선생님은 2학년 선생님도 아닌데 알아본걸 보니..그런데, 어쩌지. 선생님은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데. 선생님 딸이 너희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단다..“
녀석의 얼굴에 실망이 역력하다. 상장을 다 뽑고 나오는데, 기분이 영 찜찜하다. 녀석의 실망스런 표정에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 반은 사회과에서 <가정의 경제생활> 단원을 배우고 있다.
첫 시간에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지 못할 때>라는 것을 배웠는데, 한정된 재화로 물건을 다 사지 못할 때 현명하게 소비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배우는 단원이다.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현명한 소비라는 경제 관념 대신 먼저 부에 따른 계층이 학습되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제는 TV를 보고 있던 수민이가 “엄마, 돈 많이 벌어서 나 저거 사줘” 한다.
아마 내가 수민이의 조름에 견디는 수단으로 “엄마, 돈 없어. 돈 벌어서 사 줄게” 했던 것이 탓인가 보다. 생각 없이 녀석의 깜찍함이 귀여워 픽 웃었지만, 오늘은 내가 잘 한 건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전래동화의 “요술항아리”에서 욕심쟁이 원님의 아버지가 단지 속에서 자꾸 튀어나오는 애피소드처럼 해학적인 단지이야기가 아니라 요즘의 단지 속 아이들은 동화가 아닌 주인공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는 섹스피어의 비극에 견줄 만하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우리 아이들이 단지 속에서 환하게 웃는 꿈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