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농업기술센터와 경기도 농업기술원을 방문했다.
우리나라 농업분야의 연구와 기술보급 현황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미얀마 농과대학 교수들과 농업분야의 중진공무원들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두 기관들에서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연구와 기술보급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시설과 장비들을 보고 미얀마에서 오신 분들은 모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른바 개발된 나라들(Developed countries)의 농업연구 및 농업기술보급 전문가들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장비들을 보면 놀라는 판국이니 개발도상국들의 방문객들이 우리가 하는 일과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장비들을 보고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일게다.
그런데 두 기관들이 하고 있는 일들과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장비들을 보고 나도 놀랐다.
미얀마에서 오신 분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우리나라의 오늘의 모습을 수평적으로 단순하게 비교하며 놀라워하고 부러워했겠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즉 한 지점에서 시간을 축으로 하는 수직적 단면을 보면서 놀라는 것이기 때문에 내 놀라움에는 깊이가 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3년이던가? 대학원에 다니던 때 겨울방학 동안에 농촌진흥청의 농화학과에서 잠시 일 한 적이 있었다.
담배 잎의 니코틴함량을 분석하는 일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 때 실험실의 광경은 이랬다. 전기와 수돗물은 언제 끊길지 모를 정도였고, 선풍기는 고사하고 유해한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환풍기도 없었다.
겨울에 난방은 낮에만 연탄난로로 했다. 시약병에는 일본 상표가 붙어 있었지만 내용은 꼭 일제 시약이 아닌 화합물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천칭이라는 저울이 가장 정밀한 분석 장비였는데 쓸 때마다 영점조절을 해야 했다.
pH메터란 것이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pH메터의 초자전극이 깨지거나 감도가 떨어지면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을 시중에서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때에는 화학분석이란 것을 하는 곳이 전국적으로 몇 곳 안 되었으니 그런 것을 취급하는 업체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시험성적의 계산은 종이에 써서 했다. 수동식 계산기라는 게 있었지만 몇 대 안 돼서 차례에 오기 어려웠다.
그때 전화는 사치품이었고 공무를 위해서조차 자동차를 이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자전거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의료보험, 고용보험 같은 말들은 이른바 천국 같은 선진국들에나 있는 말들이었다. 그 때 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반반죽죽생기죽(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이었으니 공무원들의 삶도 대다수국민들의 삶과 크게 다를 수 없었다. 본래 공무원은 나라 일을 성실하게 하는 깨끗하고 고상한 선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들이 연구와 기술보급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장비들이 옛날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지는 오늘 우리들이 보는 대로다. 오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우리들이 보는 대로다.
오늘 우리에게는 많은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가진 게 많고 많다. 생활도 많은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큼 윤택하다. 이런 상황은 오늘의 우리들로 하여금 옛날 사람들보다 더 선비답게 살 수 있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적절히 그렇게 하고 있는가?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보자. 세계적 안목에서 볼 때 지금 우리는 가진 이들쪽에 서게 됐다. 우리는 이제 가진 이가 됐으니 가진 이의 덕목을 갖춰야 할 것이다. 가진 이가 갖추어야 덕목은 무엇인가? 못 가진 이들에 대한 적절한 배려를 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진 이의 부의 일부는 못 가진 이들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타산 때문에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도 보듬고 살려 하는 것이 선비정신의 한 면이기 때문에도 그래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난하던 때에는 농업분야의 연구와 기슬보급은 우리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만 해도 됐지만 오늘은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갖춘 이 분야의 역량을 못 가진 이들과 공유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적절히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비정신이 고갈되어가고 있어 그럴까? 그렇지 않기를 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