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연극제 예선대회에 직간접 참여했던 필자로서는 안타까움이 많았다. 일단 청소년 희곡이 없다는 것이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한 문학이다. 유독 희곡작가들은 공연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늪을 지나야 한다. 좋은 희곡이 텍스트가 좋은 공연을 만드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한동안은 방황하는 별들 시리즈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유사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지고 배우들도 스태프도 모르는 우리 몸에 안 맞는 번역연극을 선호하더니 이젠 무대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싸우고 밥상을 뒤 엎고 술 먹고 담배 피는 깡패, 인간 말종, 불효자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올려지고 있다. 청소년이 직접 쓰고 그것이 공동창작이더라도 좋다. 또는 지도교사가 창작한 작품으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을 위해서 막이 올라 가는게 가장 올바르며 청소년 연극제의 목적이 걸 맞는 것이다.
일본 청소년 연극제는 2006년 52회째지만 한회도 일반 연극중 히트한 연극은 출전시키지 않는다. 물론 기성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청소년연극을 썼다면 또 모르겠다. 우리의 전통 극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몸짓과 소리를 배우기에는 연습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결국은 기성연극인들의 모습을 모방만 하다가 끝이 나고 만다. 직설적으로 해보고 싶고 쏟아 붓고 싶은 작품이면 어떠fi. 깊은 문학성과 연극성이 떨어지면 그것 또한 어떠랴 액션과 캐릭터만 있으면 어떠하리. 우리가 이 작품을 왜 쓰고 왜 공연하는지 우리 피부에 와 닿는지 의미를 담아야 진정한 청소년극이 될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 , 루이지피란델로, 헤롤드 핀터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희곡작가가 단숨에 하늘에서 떨어졌겠는가. 청소년기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 비로서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거론할 수 있고 인간의 마음에 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시적언어와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