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선거, 스윙(Swing)투표와 같은 논란 속에서 5.31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 와중에서 매니페스토(Manifesto)운동을 통하여 후보자의 공약을 검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선거를 정책대결의 장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사줄만 하지만 이 검증제도 자체가 가진 제한성과 이해 및 공감대 부족 등 몇 가지 문제를 드러냈다.
먼저 매니페스토에 대한 합의된 평가절차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이를 사용했으나 외국과의 정치구조 및 정당의 배경이 다른 차이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사용됐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매니페스토의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국정치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필자도 찬성한다. 그것은 현실적 적용의 문제를 떠나 우리 정치판을 바꾸고 싶은 희망의 분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 이번 선거에서 매니페스토가 자리 잡을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는가? 유권자 중에서 공약평가를 통해 후보자를 선택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매니페스토가 우리 선거에서 유용한 평가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와 문화의 차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난공불락의 지역주의에 더하여 이번 지방선거에서 본색을 드러낸 정당공천제의 횡포와 같은 전횡이 지속되는 한 매니페스토는 현실과 동떨어진 코끼리 다리만지기로 전락할 수 있다.
당위성의 문제는 뒤로 하고 좀 더 현실적인 면에서 보자. 매니페스토란 유권자에 대한 약속으로서 기존의 정책공약과는 달리 검증이나 평가가 가능하도록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운동을 주창한 시민단체들은 몇 가지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 평가 점수를 발표하였다.
아쉽게도 매니페스토의 치명적 결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매니페스토는 공약의 구체성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년간 지역에 터 박고 살면서 오랜 동안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함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내부사정에 정통한 후보, 정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후보라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직내부 또는 외부 전문가 집단의 지원 없이는 만들어 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매니페스토가 지향하는 것처럼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공약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필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지방 정치인의 공약은 국회의원의 공약과는 차별성이 있어야 하며 따라서 그 평가기준도 달라야 한다. 오히려 이들의 공약은 구체성 보다는 방향성과 주민참여, 구성원간 합의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된 공약은 현실적으로 베껴 쓴 것이거나 빌려 온 것이기 쉽다. 그래서 그 공약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나 철학이 없이 급조된 지극히 선거용 공약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취지와 평가기준, 그 절차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교감이 부족한 채 매니페스토를 통해 할 도리를 다했다는 것은 너무 일찍 축배를 드는 교만이다. 따라서 매니페스토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평가기준에 대한 보다 범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기준은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접근방법부터 차별화되어야 한다. 일천한 역사지만 좀더 깊은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매니페스토가 우리 정치의 새로운 틀을 짜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되길 기대한다.








































































































































































































